검찰 구형은 징역 2개월, 이미 한 달 구금…변호인 “혐의 인정해야 더 빨리 귀국”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헤럴드DB)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헤럴드DB)

급성 정신질환 증세로 23만원 상당의 절도·재물손괴 등을 저질렀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미국인 교환학생이 검찰의 항소로 한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받아야 할 정신과 치료도 미뤄지고 있다고 학생 측은 밝혔다.

20대 미국인 A씨는 D-2-6 교환학생 비자로 전북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귀국을 앞둔 지난 6월 22일 서울에 머물던 그는 늦은 밤 급성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다.

A씨는 당시 한 치과에 들어가려다 미수에 그쳤고, 건물에 배달돼 있던 10만2400원 상당의 물품을 가져갔다. 건물 관리인의 안경도 파손했다. 안경 가격은 13만원으로, 전체 피해액은 23만2400원이었다.

검찰은 A씨를 건조물침입미수와 절도,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하고 징역 2개월을 구형했다. 법원은 출국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 가족은 한국 당국으로부터 그가 구금됐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아들이 예정된 날짜에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자 한국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고, 그제야 구금 사실을 알게 됐다.

가족이 A씨의 소재를 확인했을 때 그는 이미 한 달가량 구금된 상태였다. 검찰이 이후 구형한 형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A씨는 이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8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급성 정신질환으로 범행 당시 자신의 행동에 대해 형사책임을 질 수 없는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별도의 정신감정은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법정 태도와 관련 증거, 병력과 가족력 등을 종합해 정신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A씨는 선고 전 피해자 2명 가운데 1명과 합의했다. 다른 1명을 위해서는 피해 보상금을 형사공탁했다.

그러나 검찰이 무죄 판결에 항소하면서 A씨는 다시 한국에 발이 묶였다. 변호인은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A씨가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주거 불안정·도주 우려…외국인에게 불리한 구속 심사

A씨를 대리하는 법률사무소 소마의 윤여현 변호사는 비슷한 혐의를 받는 내국인이 구속되는 경우는 이례적이지만, 외국인은 상대적으로 구속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외국인 사건의 경우 주거가 일정하지 않고 도주 우려가 크다고 판단해 경미한 범죄에서도 먼저 구속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한국에 가족이나 지인이 없는 외국인 피고인은 구금 직후부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 가족이나 지원망이 있는 피고인과 달리 외부의 도움을 곧바로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통역과 국선변호인이 제공되더라도 언어 장벽은 남는다.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 초기 절차에서 자신의 건강 상태나 개인적인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

A씨는 체류 문제까지 겪었다. 윤 변호사에 따르면 A씨의 비자는 구금 중 만료됐지만 본인과 가족 모두 이를 제때 알지 못했다. 보석으로 풀려난 뒤에도 체류 기간을 연장하지 못해 과태료가 부과됐다.

윤 변호사는 형사 절차와 출입국 제도가 맞물리면서 외국인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불이익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죄라서 집에 못 간다”

A씨 가족이 가장 답답해하는 대목은 무죄를 선고받고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A씨의 아버지는 코리아헤럴드에 “아들은 유죄 판결을 받아서가 아니라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에 발이 묶여 있다”고 말했다.

A씨 가족은 그가 미국에서 받아야 할 정신과 치료가 시급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에는 머물 집도 없고, 필요한 치료도 국내에서 가입한 보험의 보장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A씨 아버지는 아들이 보석으로 풀려나기 전 한국에 들어와 지금까지 곁을 지키고 있다. 윤 변호사는 A씨를 돌볼 사람이 없어 아버지가 본업까지 중단한 상태라고 전했다.

윤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외국인 피고인이 처할 수 있는 역설을 보여준다고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죄를 다투는 것보다 혐의를 인정하는 편이 더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무죄 판결에 항소하면 국내에 연고가 없는 외국인도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 머물러야 할 수 있다. 반면 경미한 범죄 혐의를 인정하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강제퇴거 절차 등을 거쳐 오히려 더 빨리 출국할 가능성이 있다.

윤 변호사는 “외국인 피고인 입장에서는 결국 죄를 인정하고 한국에서 추방당하는 것이 가장 빨리 집에 가는 길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관행적 항소’ 줄인다는데…이번엔 왜

법조계에서는 이번 항소가 무죄 판결에 대한 관행적 항소를 줄이려는 최근 검찰의 움직임과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심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법률사무소 원곡의 최정규 변호사는 “무죄 판결에 대한 항소를 모두 무리한 항소라고 비판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번 결정은 무분별한 항소를 지양하려는 최근 흐름과 배치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동안 1심에서 전부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 관행적으로 항소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검찰청은 지난 6월부터 이를 줄이기 위한 내부 지침 개정을 검토해왔다.

개정안에는 1심 전부 무죄 사건의 항소 여부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하는 방안이 담겼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거나 피해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더라도 처벌 필요성이 낮은 경미한 재산범죄라면 항소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재명 대통령이 검찰의 관행적 항소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시작됐다. 무리하게 기소한 사건에서 무죄가 나오면 검찰이 다시 항소해 피고인의 경제적·정신적 부담을 장기간 키운다는 취지였다.


seungku99@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