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해방촌 초입의 담벼락을 따라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전통 옹기들이 철거됐다. 가게 소유가 아닌 부지에 항아리가 놓여 있다는 신고가 접수된 데 따른 것이다.

한신옹기에 따르면 가게 측은 최근 한 국가기관으로부터 해당 부지에 대한 과거 5년치 사용료 950만원을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받았다. 이에 지난 7일부터 담벼락을 따라 놓여 있던 옹기들을 옮기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옹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옹기들 철거 전과 후의 모습. (한신옹기 제공)
옹기들 철거 전과 후의 모습. (한신옹기 제공)

현재 한신옹기를 운영하고 있는 고(故) 신연근 창업주의 막내며느리 윤유진 사장은 코리아헤럴드에 "저도 사실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서 유지를 하려고 했는데, 이제 어쩔 수 없이 철거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신씨가 2024년 12월 세상을 떠난 뒤 가게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1967년부터 해방촌에서 영업해 온 한신옹기는 오랫동안 지역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신씨는 리어카에 옹기를 싣고 해방촌 일대를 다니며 판매를 시작했다. 1982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여섯 자녀를 키우면서도 가게를 계속 운영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옹기가 더 잘 띄도록 하기 위해 인근 미군부대 담벼락을 따라 하나둘씩 옹기를 놓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방촌의 '옹기길'이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옹기들은 해방촌을 상징하는 풍경 가운데 하나가 됐다. 윤 사장에 따르면 신씨는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열린 관련 행사에서 선정한 70인 가운데 한 명이기도 했다.

옹기들 사이에 앉아 있는 신씨. (한신옹기 제공)
옹기들 사이에 앉아 있는 신씨. (한신옹기 제공)
한신옹기 가게 안, 리어카를 몰고 다니던 신씨의 모습. (박태미/코리아헤럴드)
한신옹기 가게 안, 리어카를 몰고 다니던 신씨의 모습. (박태미/코리아헤럴드)

윤 사장은 철거가 시작된 지난 7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윤 사장은 "몇십 년 만에 재방문한 외국인들도, 연세 있으신 시민분들도, 옹기가 뭔지 모르는 젊은 분들도 모두 좋아하셨던 해방촌 항아리길"이라며 "마을 초입이라 지나가는 사람들 보기 좋으라고 꽃을 심고 힘겹게 물을 주시던 어머니에게 죄송하다"고 적었다.

옹기들 철거 전 모습. (출처: Visit Seoul)
옹기들 철거 전 모습. (출처: Visit Seoul)

철거 소식이 알려지자 해방촌 주민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시했다. 특히 코리아헤럴드 인스타그램에는 옹기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을 공유하는 댓글들이 잇따랐다.

그레이스 전 씨는 어머니의 가족이 과거 한신옹기 인근에 살았다며, 어머니가 30년 넘게 이곳을 찾지 않았지만 여전히 옹기 담벼락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가 알던 한국과 내가 아는 한국을 이어주는 것 중 하나"라며 철거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조젯 본아다 씨는 약 30년 전 한신옹기 맞은편에 살며 인근 미군기지 내 교회에서 일했던 기억을 꺼냈다. 그는 당시 한국을 떠나는 교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한신옹기에서 작은 옹기를 사곤 했다며, 오래된 동네의 상징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적었다.

해방촌에서 2020년부터 거주해 온 미국인 사라 맥(Sarah Mack)은 철거 소식을 접한 뒤 국민신문고에 넣을 청원 캠페인을 시작했다. 동의하는 이들이 한 명당 항아리 모양의 종이 하나를 붙여 사라진 옹기벽을 재현했고, 인터뷰 당시 확인된 인원은 82명으로, 별도로 온라인에서 참여한 인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저한테는 그 옹기들이 해방촌 사람들처럼 느껴져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조금 찌그러진 것도 있고 색도 다 다르지만, 그래도 모두 이곳에 속해 있잖아요. 우리도 그렇고요.”

사라 맥이 13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옹기 담벼락을 다시 세우자 (Rebuild the kimchi pot wall)"라고 적힌 포스터를 들고 있다. 포스터에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의견을 제출한 사람들의 이름이 항아리 모양의 종이에 적혀 있다. (박태미/코리아헤럴드)
사라 맥이 13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옹기 담벼락을 다시 세우자 (Rebuild the kimchi pot wall)"라고 적힌 포스터를 들고 있다. 포스터에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의견을 제출한 사람들의 이름이 항아리 모양의 종이에 적혀 있다. (박태미/코리아헤럴드)
한 시민이 13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옹기벽을 다시 세우자"는 뜻을 담아 시민들의 이름을 항아리 모양으로 모은 포스터들을 살펴보고 있다. (박태미/코리아헤럴드)
한 시민이 13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옹기벽을 다시 세우자"는 뜻을 담아 시민들의 이름을 항아리 모양으로 모은 포스터들을 살펴보고 있다. (박태미/코리아헤럴드)

옹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토바이 몇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맥은 "지금은 그 자리에 오토바이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리기도 한다"며 "우리는 이 풍경을 잃었는데, 그 대신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코리아헤럴드는 용산구와 관계 기관에게 입장을 요구 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옹기 철거 후 일요일인 13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 "항아리길'"에는 오토바이 몇 대가 세워져 있다. (박태미/코리아헤럴드)
옹기 철거 후 일요일인 13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 "항아리길'"에는 오토바이 몇 대가 세워져 있다. (박태미/코리아헤럴드)

tamm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