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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영국 화가가 이순신 장군 초상화를?

엘리자베스 키스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 출간

June 10, 2020 - 11:50 By Yonhap

100년 전 한국을 찾았던 영국 출신 여성 화가가 그린 조선 시대 무인에게서는 용맹함과 카리스마가 흘러넘친다. 이 그림을 발굴한 재미 한국인 학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사실일 경우 현존하는 이순신 장군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그림이 된다. 그리고 아마도 실물에 가장 가까운 초상화일지 모른다.

최근 발간된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는 20세기 전반기에 주로 활동한 영국 출신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1946년 펴낸 'Old Korea'를 번역하고 그가 1919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그렸던 그림들을 수록했다. 송영달 전 미국 이스트캐롤라이나 교수가 지난 2006년 2월 처음 번역 출간했으나 키스의 한국 관련 그림을 추가하고 화질도 대폭 개선하는 한편 초판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다양한 정보를 더해 이번에 '완전 복원판'으로 다시 내놓게 됐다.

우연히 일제 강점기 한국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낸 키스의 그림들을 접하고 큰 흥미를 느껴 그의 생애와 작품에 관해 연구해온 송 전 교수는 키스가 남긴 그림들을 후손으로부터 매입하는 등 그의 작품을 수집, 보존하는 데도 힘을 기울여 왔다.

(영국 출신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조선 시대 무인의 초상화. 수채화, 77 X 55)

1887년 또는 1888년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에서 태어난 키스는 1915년 일본을 방문한 이후 동양의 이색적인 아름다움과 문화에 심취해 동양 각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특히 1919년부터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진솔한 우리 문화와 일상을 수채화로 그렸다. 1919년 겨울 일본 도쿄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을 전시했다. 이때 일본 '신판화 운동'의 기수 와타나베 쇼자부로(渡邊庄三郞)를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목판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키스는 1921년 서양인 화가로서는 최초로 서울에서 연 전시회를 비롯해 서울과 미국, 유럽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개최했다. 1956년 영국 런던에서 사망한 그의 작품은 미국 오리건대학 조던 슈니처 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번 '완전 복원판'에 수록된 그림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 시대 무관을 그린 초상화다. 송 전 교수는 지난 2007년 캐나다에 살고 있던 키스의 조카 집을 찾았을 때 봤던 키스의 유작 중에서 제목이 따로 표기되지 않은 이 수채화를 발견한 순간 바로 '이순신'을 떠올렸지만, 그때는 워낙 그림이 많아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몇 년 뒤 숨진 조카의 딸에게 이 그림을 포함해 키스의 작품들을 매입한 송 전 교수는 그림을 찬찬히 분석하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본 결과 이것이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엘리자베스 키스 초상화(일본 화가 이토 신수이(伊東沈水), 1922, 목판화)

이런 추정을 하게 된 근거 가운데 하나는 주인공의 뒷배경에 나오는 거북선과 판옥선 그림이다. 키스는 상상화나 추상화와는 거리가 먼 사실화만을 그렸다고 송 전 교수는 지적한다. 언제나 실물을 그렸으며, 모델을 구해 직접 보면서 카메라로 찍듯이 그렸다고 한다. 그림의 규모도 이 작품의 주인공이 특별한 인물임을 나타낸다. '77㎝ X 55㎝'인 이 초상화는 키스가 평생 그린 그림 가운데 제일 크기 때문이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한국의 역사도 잘 알았던 키스가 굳이 다른 인물의 배경에 거북선을 그려 넣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송 전 교수는 이것이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라는 심증을 굳혔고 일부 한국의 이순신 전문가도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물론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다. 송 전 교수는 1920년대만 해도 남해안 일대에 다수 남아 있었던 이순신 사당에 걸린 그림을 보고 따라 그렸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런 짐작이 옳은지, 옳다면 정확히 어떤 경위로 키스가 이순신 장군의 초상을 그리게 됐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전문 지식을 갖춘 역사가들의 과제로 남게 됐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100년 전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한국을 깊이 사랑하고 그곳 사람들을 정확히 이해한 영국 여성이 있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인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만세운동을 지켜보고 이런 글을 남긴다.

"한국인의 자질 중에서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일본 경찰들이 남자 죄수들을 끌고 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중략) 일본 경찰의 키는 한국 죄수들의 어깨에도 못 닿을 정도로 작았다.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 사람들은 초라해 보였다. (중략) 3·1 만세운동은 놀라운 발상이었고 영웅적인 거사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