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스탈린 시절 폭정을 폭로하는 인권운동가로 활동해온 역사학자가 아동 포르노물 제작과 성폭력 혐의로 체포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사법 당국의 조치를 해당 역사학자의 인권 운동에 대한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북서부 카렐리야 공화국에서 소련 시절 정치적 탄압을 연구하는 유명 인권운동단체 '메모리알'(기억) 지부장으로 활동해온 유리 드미트리예프(62)가 성폭력 혐의로 27일(현지시간) 경찰에 체포됐다.
그의 딸은 아버지가 지인이 묻힌 카렐리야 공화국 수도 페트로자보츠크 외곽의 공동묘지를 방문했다가 나오는 길에 경찰에 체포됐다고 전했다.
일부 현지 언론은 그가 성폭력 혐의에 대한 당국의 수사를 피해 폴란드로 도주하려다 붙잡혔다고 보도했다.
유리 드미트리예프 [타스=연합뉴스]
드미트리예프는 입양한 어린 딸의 나체 사진을 찍어 아동 포르노물을 제작하려 한 혐의로 지난 2016년 12월 구속돼 수사를 받아오다 올해 1월 말 페트로자보츠크를 이탈하지 않는 조건으로 임시 석방된 상태였다.
그는 입양한 딸이 3살 때인 지난 2008년부터 약 8년간 포르노물 제작을 위해 여러 차례 딸의 나체 사진을 찍으며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드미트리예프는 수사 과정에서 병을 앓는 딸의 성장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정기적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딸이 11살이 된 이후에는 촬영하지 않았고 찍은 사진은 자기 컴퓨터에만 보관해 유포한 적도 없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드미트리예프의 성추행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그가 집에 총기 부품을 불법으로 보관해온 혐의도 추가해 구속 연장을 신청하는 등 기소에 열을 냈다.
페트로자보츠크시 법원은 그러나 지난 1월 구속적부심에서 드미트리예프가 페트로자보츠크를 벗어나지 않는 조건으로 그를 임시 석방하고 검찰이 불구속 수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시법원은 뒤이어 지난 4월 드미트리예프의 아동 포르노물 제작 및 성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은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카렐리야 공화국 대법원은 이달 중순 항소심 공판에서 무죄 판결에 대한 재심을 명령했다.
현지 수사당국은 이날 드미트리예프를 거주지 이탈을 이유로 다시 체포한 뒤 아동 포르노물 제작 사건과 관련 새로 확보한 증거물을 근거로 성폭력 혐의로 재입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미트리예프는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폭정을 고발하는 연구자로 유명하다.
1930~40년대 정치범 희생자들에 대한 책을 펴냈고, 지난 1997년에는 스탈린 대숙청기 때 9천여 명이 총살돼 매장된 집단 매장지를 카렐리야 공화국에서 발견해 러시아를 떠들썩하게 했다.
일각에선 사법당국이 정치범 희생자들에 대한 드미트리예프의 연구를 방해하기 위해 근거 없는 성폭력 혐의를 씌워 그를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카렐리야 공화국 현지 언론인들과 문화계 인사들도 그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