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내내 쏟아진 빗줄기는 '오빠'를 향한 사랑을 가로막지 못했다. 팬들은 목 놓아 "오빠"를 불렀고, 노래를 '떼창'했으며, 객석에서 일어나 열정적으로 춤을 췄다.
이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조용필은 두 손을 번쩍 들었고, 손으로 '브이'(V)를 그리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젊은 날의 흑백 사진과 옛 신문 기사들이 9개의 LED 위로 흘렀다.
"항상 저는 여러분 앞에 있어야 좋은 것 같아요. 무대에 나오면 긴장한다는데 전 안 그래요. 너무 편해요. 전 평생 딴따라인 것 같습니다."
12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조용필 50주년 공연[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제공=연합뉴스]
12일 오후 7시 50분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막이 오른 조용필 데뷔 50주년 공연 '땡스 투 유'(Thanks to you)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흰색 우의를 입은 4만5천 명의 관객이 모여들었다.
3층 객석에는 '가왕, 전설이라는 타이틀보다 더 자랑스러운 오빠라는 이름!', '변함없는 오빠로 있어 줘서 고마워요. 땡큐! 조용필', '내 삶에 깃든 당신의 음악으로 50년이 행복했습니다' 등 팬클럽이 내건 플래카드가 즐비했다. 팬클럽 이터널리는 창단 21주년을 기념해 '조용필 보유국 대한민국'이라고 써 붙인 떡을 돌리기도 했다.
이날 조용필의 진가는 곳곳에서 터진 '떼창'이 증명해줬다. "떼창 한번 해보겠다"며 다음 부를 곡목의 약간의 힌트만 줘도 관객들은 환호하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설레 했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창 밖의 여자' 중),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Q' 중) 한 소절만 토해내도 객석에서는 코러스처럼 '떼창'이 메아리로 울렸다.
4만5천 관객 환호한 조용필 50주년 공연[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제공=연합뉴스]
히트곡이 많아 선곡에 애를 먹은 그가 빨간 통기타를 잡고서 '그 겨울의 찻집'과 '서울 서울 서울', '허공' 등을 맛보기로 한두 소절씩 들려주자 관객들은 계속 노래를 이어가며 조용필의 노래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제 노래를 다 못 들려드려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다하려면 3일 해야 해서, 고려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들어 좀 몸이 안 좋았다"고 했지만 록·발라드·디스코·민요 등 장르마다 변주하는 창법은 '가왕'의 관록을 새삼 느끼게 했다.
빗줄기를 뚫고 나온 그의 소리는 빛이 산란하듯 퍼져나갔다. 카랑하게 쏘는 진성은 굴절 없이 날렵했고, 기교를 섞은 판소리 창법은 묵직했다.
조용필이 민요 '한오백년'과 '간양록'을 부르며 허리 굽혀 토해낸 절절한 소리에 "아~!" 하는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일찌감치 밴드 위대한탄생과 이번 공연의 최종 리허설을 마치고도 홀로 이틀 걸러 하루씩 전곡을 복기한 연습량에, 노래에 필요한 몸의 근육까지 관리해온 완벽주의 덕.
단련된 소리는 날씨까지 고려한 음향이 뒷받침돼 객석으로 온전히 스며들었다. 이번 공연에는 해외 음향 전문가가 가세했고, 고른 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4개의 '딜레이 타워'도 세웠다.
또 무대에서 떨어진 스탠드석 관객을 배려하고자 그가 2011년 제작한 '무빙 스테이지'는 이날도 두 차례나 전진하며 십분 활용됐다.
그가 '미지의 세계'를 부르자 무빙 스테이지는 그라운드에 깔린 레일을 타고 90m 전진해 2·3층 객석 앞으로 다가갔다. '헬로'와 '비련', '고추잠자리'를 이 무대에서 선보이자 스탠드석 관객들은 역시 '떼창'과 함성으로 화답했다.
조용필의 올림픽주경기장 단독 공연은 이번이 7번째다. 처음 이 무대를 밟은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서울 서울 서울'을 불렀을 때라고 한다. 이곳에서 펼친 단독 콘서트 중 빗속 공연은 이번까지 세 번째다.
그는 "계속 날씨가 좋다가 하필이면 오늘 이렇게 비가 오는지, 아 미치겠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빗속 공연 펼친 조용필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제공=연합뉴스]
궂은 날씨로 인한 미안함까지 담은 듯 그는 이날 팬들에게 "음악이 좋아서 취미로 시작했는데 여러분이 있어 50년 동안 할 수 있었다"며 아낌없이 고마움을 표현했다. 팬들이 '오빠'를 계속 부르자 "왜, 왜 부르고 그래"라며 친근하게 소통하고 객석의 오랜 팬을 알아보기도 했다.
마지막 곡 '슬픈 베아트리체' 이후에도 '꿈', '친구여', '바운스'를 부르며 두 차례나 앙코르를 선사했다. "진짜 감사합니다"라며 무대 좌우로 끝까지 가며 90도 인사도 수차례 했다.
성스러운 합창과 타악기 소리가 울려 퍼진 가운데 선사한 오프닝곡의 노랫말에는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스며있었다.
'니가 있었기에/ 잊혀지지 않는/ 모든 기억들이/ 내겐 그대였지/ 해주고 싶었던/ 전하고 싶었던 그말/ 땡스 투 유~.'
관객 조 모(45) 씨는 "어린 시절부터 조용필 형님의 노래를 들었다"며 "어느덧 가사 하나하나의 의미까지 사무치게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니 형님의 목소리가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는 중학교 동창인 배우 안성기를 비롯해 조용필과 지난달 평양 공연을 함께한 이선희·윤도현·알리, 밴드 위대한탄생 출신인 김종진·송홍섭·김광민, 후배가수 이승기와 동방신기 최강창민 등이 자리했다.
또 본 공연 전에는 최근 KBS 2TV '불후의 명곡' 조용필 특집 3부 우승팀인 아이돌 그룹 세븐틴이 올라 '단발머리'와 자신들의 곡 '박수'를 선보였다.
서울 공연으로 막이 오른 50주년 투어는 19일 대구 월드컵경기장, 6월 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 9일 의정부 종합운동장 등지로 이어진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