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쓰요시 등 국내외 작가, 헬로우뮤지움서 '#노워' 전시
날카로운 눈매를 한 젊은 여성이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표정은 진지하지만, 손에 들린 총의 정체가 요상하다. 손잡이 부분은 배추 잎사귀로 만들었다. 구멍 뚫린 어묵으로 조준경을 형상화했고, 총열 덮개 부분에는 꽁치를 올려놓았다. 당근과 버섯, 무 등 온갖 채소가 주렁주렁 달렸다.
"도쿄 시장에서 장을 봐온 재료들입니다. 촬영을 마친 뒤 꽁치살 완자탕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나눠 먹었죠. 일본 가정에서 흔히들 먹는 음식입니다."
사진 속 총부리 끝에 서 있던 오자와 쓰요시(53)가 웃음을 띠며 말했다. 오자와는 다양한 퍼포먼스 작품을 만드는 작가다. 우유 배달함을 전시장으로 꾸민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갤러리' 작품 등으로 유명하다. 김홍석, 첸 샤오시옹(중국)과 함께한 작가 그룹 '시징맨'으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오자와는 2011년 시작한 '채소 무기' 작업을 들고 4일 개막한 서울 성동구 금호동 헬로우뮤지움 기획전 '#노워'(NOwar)에 참여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참사는 뉴욕 방문을 앞뒀던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줬다. '폭력은 무엇인가'를 계속 고민하던 끝에 탄생한 작업이 '채소 무기'다.
작가는 각국을 돌며 일반인 모델과 함께 시장에서 장을 본 뒤, 식재료로 총기를 만든다. 촬영을 끝낸 '채소 무기'를 해체한 뒤, 그 나라 고유의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 것으로 작업은 끝난다. 많게는 100명의 사람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다.
"전쟁이나 싸움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의 문화나 관습을 향한 편견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음식만큼 그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없지요. 그래서 그 나라 식재료로 대표하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 자체가 하나의 평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형태만 전쟁을 떠올리게 할 뿐,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공격 기능을 하지 못하는 총을 보여줌으로써 과연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묻는 것 또한 '채소 무기'의 메시지다.
오자와는 특히 어린이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을 각별하게 생각했다. "예술은 먹는다고 고통을 바로 없애주는 진통제가 아니라, 여운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작품을 본 아이들의 마음속에 여운이 남아서 10년 20년이 흐른 뒤,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게 됐으면 합니다."
그는 아베 신조 정권이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개인적으로는 정권의 그러한 움직임이 불편하다"라면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너무 드러내놓고 하기보다는, 작품으로 제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작업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헬로우뮤지움이 주 관람객인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낯선 '전쟁'이라는 주제를 끌고 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다. 지난해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을 당시, 김이삭 관장이 외국 어린이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부터 '헬로우뮤지움은 남북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메시지를 내고 있느냐'는 물음을 여러 차례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김 관장은 "그동안 미술관에서는 전쟁이나 안보보다는 좀 더 조형적이고, 미술 내부의 주제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오자와 외에도 전준호, 하태범, 허보리 작가가 함께했다.
허보리 작가는 정육점 진열대에 헌 넥타이 등을 이용해 만든 기관총과 총알, 헬멧 등을 놓아둔 작품을 통해 사회생활, 즉 '피가 흐르지 않는 전쟁'을 형상화했다. 용산 전쟁기념관 조각을 모티프로 한 전준호 작가의 '형제의 상'은 서로 만나려 하지만 만날 수 없는 국군과 인민군을 형상화했다.
하태범 작가의 작품은 언뜻 액자에 백지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린이 눈높이에서 보면 전쟁으로 고통받는 어린이 난민의 모습을 담았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 관람객도 전쟁의 잔혹함, 어린이가 누려야 하는 자유와 권리, 일상의 소중함 등을 곱씹어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여럿 나왔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