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 일간 더타임스의 일요판 더선데이타임스는 29일(현지시간) 부유한 집에서 '탈출'한 한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사연을 보도하면서 최근 국제사회의 이목을 끈 사우디 왕가의 개혁 조치를 에둘러 비판했다.
이 신문이 보도한 할라 알수에이케트(35)라는 여성은 사우디 동부 해안 도시 알코바르의 대부호 셰이크 무바라크의 딸이다.
셰이크 무바라크는 이 지역에서 석유, 천연가스 사업으로 돈을 벌어 고층 빌딩과 호화 요트 등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갑부다.
할라가 사는 주거 단지는 그의 일가친척만을 위한 곳으로 자체 학교와 병원까지 둘 만큼 '작은 왕국'이었다. 그 역시 침실이 16개짜리 호화 빌라 단지에 살았다.
그의 자매들은 쇼핑할 용돈으로만 한 달에 3천~4천 유로를 받았다. 부러울 것 없는 부족함이 없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아버지가 구축한 이 '왕국'을 탈출했다.
할라 알수에이케트(사진=연합뉴스-더선데이타임스)
할라는 "거대하고 호화로운 집에서 살았지만 나는 죄수였다"며 "나와 자매들은 항상 감시당했고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상대 쪽이 보이지 않는 거울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있는 교수에게서 마케팅 관련 과목을 배웠다.
문제는 할라가 은행 대출을 받아 의류와 의약품을 수입하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할라는 "남자 형제들이 사실상 나를 감옥에 넣은 것처럼 감시했다"면서 "그들은 '우리 집은 돈이 많으니 일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내가 일을 그만둔 뒤에야 나를 놔줬다"고 말했다.
7년 전 그는 단지 안에서 유치원을 열었을 때 가까운 바레인에 있는 회사에 IT 장비 설치를 맡겼다. 이때 15살 연상의 독일인 허버트 아이켈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의 관계를 의심한 가족은 그를 단지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악의 눈'을 치유한다면서 쿠란(이슬람 경전)을 담근 물을 마시게 하거나 목을 졸라 기절시키기도 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할라는 지난해 6월 바레인을 거쳐 이스탄불에 도착했지만, 부친이 손을 뻗친 탓에 공항에서 체포됐다.
우여곡절 끝에 풀려나 아프리카를 통해 독일 코블렌츠에 안착, 사우디에서 살던 호화 저택과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아파트에서 남편 아이켈과 산다.
할라는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해 사우디가 나아지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웃었다"며 "사우디 여성은 우리처럼 옷을 입을 수 없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도 없고,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우디 왕자가 말한 것(개혁)은 서구를 향한 '보여 주기용'"이라면서 "진짜 문제는 장막 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 가족의 여성은 운전을 허락받지 못할 것이라고 100%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사우디에서 남성 보호자 제도(여성의 외부활동을 남성 가족이 통제하는 것)가 여전하다면서 "나는 지금 맑은 공기를 마시고 밖에 나가 빵집에 갈 수 있지만 사우디 여성은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