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독립 절차를 중단하고 대화를 제의한 카탈루냐 자치정부에 '최후통첩'으로 반격에 나섰다.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전격 대화 제안에 화답하는 대신 스페인이 '자치권 몰수'의 예비단계에 착수함으로써 카탈루냐 독립문제를 둘러싼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 국면으로 치닫게 됐다.
라호이 총리는 11일(현지시간) 오전 긴급 각료회의를 주재한 뒤 생방송 담화를 통해 "내각은 카탈루냐 자치정부에 독립을 선언한 것인지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으로부터의 응답이 향후 상황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정부는 신중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행동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카탈루냐에 최후통첩하는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 (EPA=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스페인 정부 관리들은 라호이 총리가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에게 오는 16일까지 독립선언 여부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제시해 달라면서 5일간의 시한을 제시했다고 AFP에 전했다.
라호이 총리의 이런 발언은 스페인 헌법에 규정된 중앙정부의 권한에 따라 자치권 몰수의 예비조치에 착수한 것으로, 일종의 '최후통첩'에 해당한다.
전날 "독립을 선포할 권한을 투표로 위임받았지만, 독립선언 절차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에게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최후경고를 한 셈이다.
총리는 이날 직접 헌법 155조 발동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맥락상 이 조항 발동의 전제조건 충족을 위해 카탈루냐에 독립선언 여부를 명확히 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스페인 헌법 155조는 중앙정부가 헌법을 위반하고 중앙정부에 불복종하는 자치정부를 상대로 '필요한 모든 조처'를 다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이 조항의 발동을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각료회의를 거쳐 자치정부에 최후경고를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스페인 정부가 155조에 근거해 카탈루냐를 상대로 쓸 수 있는 방안으로는 자치권의 일부 또는 전면 몰수, 자치정부와 의회 해산 후 지방선거 실시, 자치경찰 무장해제 등 대부분 매우 강경한 조치들이다.
정부의 최후경고에도 자치정부가 중앙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스페인 정부는 상원에 헌법 155조 발동안을 제출할 수 있으며, 상원이 이 안을 통과시키면 총리는 자치정부를 상대로 합법적으로 '필요한 모든 조처'를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스페인이 이런 카드를 꺼내 들 경우 카탈루냐와 정면충돌하거나 최악의 경우 유혈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어 스페인 정부로서도 부담이 매우 큰 상황이다.
라호이 총리는 생방송 담화에 이어 의회에 출석해서는 카탈루냐 측의 '국제사회 중재 제안'도 전격 거부했다.
그는 의회 질의 답변 과정에서 "민주주의 법규와 불복종 및 불법 사이에 중재가 가능한 여지는 없다"고 잘라 말하고 카탈루냐의 분리독립 추진에 대해 "동화 같은 얘기"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그는 "(독립은) 평화롭지도 자유롭지도 않으며, 유럽연합이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모두가 (독립이 엄청난) 비용을 초래하리라는 것을 잘 안다"고 덧붙였다.
라호이 총리가 이처럼 헌법에 따른 강제력 동원을 경고하고 외부 중재도 전격 거부함에 따라, '상징적 수준의 불완전한 독립선언'만 하고 자치권 확대 협상 등 대화에 나서려 했던 자치정부와 분리독립파는 코너에 몰렸다.
카탈루냐는 투표를 통해 독립국이 될 자격을 얻었음을 대내외에 알리는 한편, 높아진 협상력을 바탕으로 스페인을 상대로 자치권을 대폭 확대한다는 구상이었으나, 라호이 총리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또다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