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시작된 '살충제 계란' 파문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정부의 허술한 친환경 인증 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정부 조사 결과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7곳의 산란계 농가 중 6곳이 친환경 인증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6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살충제인 피프로닐과 비펜트린 성분이 검출된 농장은 경기 남양주 마리농장, 경기 광주 우리농장, 강원 철원 지현농장, 경기 양주 신선2농장, 충남 천안 시온농장, 전남 나주 정화농장, 전북 순창 농장 등 7곳이다.
이중 양주 신선2농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부의 친환경 인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비펜트린이 기준치보다 21배나 높게 나타난 전남 나주의 산란계 농가도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주부 안 모(35·경기 고양시) 씨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에서 기준치보다 21배나 높은 살충제가 검출됐다니 너무 어이가 없다"며 "앞으로는 계란에 친환경 마크가 있다고 한들 누가 믿고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국내에서 친환경 농산물 인증 업무는 60여개 민간업체가 맡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9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국립농산물관리원이 업무를 전담했으나 2002년부터 민간업체가 참여하기 시작해 올해 6월부터는 민간업체가 모든 인증 업무를 넘겨받았다.
농관원은 인증 업무가 제대로 처리됐는지에 대한 사후관리만 한다.
민간업체들은 인증을 신청한 농가에 대해 서류 및 현장심사를 통해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고 친환경 인증서를 내준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는 정부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직불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상품에 친환경 마크가 붙으면 그렇지 않은 상품보다 가격을 2배 가까이 비싸게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업체 입장에서는 매력이다.
하지만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를 통해 부실이 여실히 드러난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는 도입 당시부터 부실인증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13년에는 대규모 부실인증 사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민간 인증 대행업체 직원이 자신이 경작한 농산물에 '셀프인증'을 하거나 인증 취소 후 재인증을 받는 데 필요한 기간이 지나지 않은 농가에 인증서를 교부한 사례 등이 적발된 것이다.
이 때문에 농촌 현장에서는 친환경 인증 업무를 민간에 이양한 것이 적절했느냐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정부 기관이 다시 업무를 넘겨받아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들은 "문제점이 계속해서 노출되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가 친환경 인증제도의 내용을 잘 모르고 있었거나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비판받을 대목이다.
친환경 마크가 붙은 계란은 닭에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인 피프로닐뿐 아니라 비펜트린을 포함한 모든 농약 성분 자체가 나와선 안 되지만 정부는 지난 14일 처음 살충제 계란 검출 사실을 발표하면서 비펜트린은 '닭의 이(와구모)를 없애기 위해 기준치(0.01ppm) 이하로 사용이 허용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줄곧 비펜트린의 경우 '허용된 살충제'이므로 기준치 이상 검출된 농가에 대해서만 조치를 취하겠다고 설명해왔다. 친환경 농가과 그렇지 않은 농가를 구분하지도 않았다.
15일에는 전북 순창의 친환경 농가에서도 비펜트린이 검출됐지만 기준치 이하로 검출돼 회수·폐기조치는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비펜트린이 검출된 5개 농가 가운데 양주 신선2농장을 제외한 4곳은 비펜트린을 포함한 어떤 살충제도 써선 안 되는 친환경 인증 농가였다.
정부가 친환경 인증 농가와 일반 농가를 구분해 전수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기준치'에만 집착하는 사이 국민에게는 잘못된 정보가 흘러들어 간 셈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