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버리는 게 너무 어려워요. 길에 보이는 것도 가져다 놓고 싶고요."
부산 남구에 사는 A(73) 씨는 10여년 전 직장에서 퇴직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가장이었다.
퇴직 이후 A씨는 동네를 돌며 이것저것 주워 모으기 시작했고 방 2칸짜리 빌라는 주워온 물건으로 채워졌다.
10여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A씨의 이런 행동은 계속됐고 아내는 물론 세 딸과도 떨어져 지내게 됐다.
가족은 500만원을 들여 집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치운 적이 있지만 A씨가 같은 행동을 하자 자포자기에 가까운 상태였다.
(연합뉴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한 A씨 딸들의 요청으로 지난달 중순 남구청 직원을 비롯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봉사자, 해군작전사령부 장병 등 40여명이 A씨의 집에서 대대적인 청소작업을 벌였다.
두 차례에 걸친 작업 끝에 A씨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는 모두 20t이 넘었다. 전기밥솥만 30개가 나왔다.
인근 주민들은 A씨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보고 "그동안 우리가 내다 버린 게 저 집에 다 있었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A씨는 쓰레기 탓에 최소한의 생활공간마저 없어지자 빌라 주차장이나 옥상을 전전하며 노숙자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연합뉴스)
A씨가 보인 행동은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어떤 물건이든 버리지 못하는 저장강박증으로 불린다.
저장강박증은 쓰레기와 불필요한 물건을 장기간 집안에 방치하기 때문에 악취와 오염이 발생하고 가족은 물론 이웃에도 피해를 줘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남구는 이런 주민들을 도우려고 올해 5월부터 '우리집이 살아났다'는 자체적인 특화사업을 시작했다.
'우리집이 살아났다'는 남구가 주도하는 취약계층 돕기 모금운동인 '오륙도 5천600원 희망나눔'의 기금으로 진행하는 특화사업 중 하나다.
현재까지 6개 가구가 저장강박증인 것으로 확인돼 남구의 지원을 받고 있다.
간경화와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사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 할머니가 남긴 살림살이를 50년 넘게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와 사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 낡은 집에 40년 넘게 책과 빈병 등을 모아온 전직 유치원 교사 등이 남구의 지원으로 희망을 찾았다.
남구의 특화사업은 단순히 집안의 쓰레기를 치워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저장강박증을 치료해 정상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초기에는 사회복지사 등이 가구를 직접 방문해 지속적인 만남을 갖고 봉사단체 등이 나서 주거환경을 정리한 뒤 정신과 치료와 취업지원 등이 이어진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으면 저장강박증 주민은 다시 집안을 쓰레기로 채우기 때문이다.
남구 주민지원과 최영월 주무관은 4일 "여러 소식통을 통해 저장강박증과 관련한 사례를 접수하고 있다"며 "우리의 사소한 관심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주민을 찾아내 정상적인 생활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