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 부동산 안정화 대책과 정부의 투기단속 영향으로 잠시 주춤하던 서울 아파트 시장이 이달 들어 다시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3주가량 둔화하던 가격 상승폭이 7월 이후 다시 확대됐고 매물은 자취를 감췄다.
이달 3일부터 청약조정지역 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가 강화됐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모습을 놓고 부동산 시장과 전문가들 사이에는 "6·19대책의 효과가 다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지난달 거래 중단에 따른 일시적 기저효과"라는 분석까지 평가가 엇갈린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 강남 재건축 다시 강세…서울 아파트값 상승폭 커져
9일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0.20% 상승했다. 이는 전주(0.16%)보다 상승폭이 커진 것이다.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달 초 0.45% 오른 뒤 12일 정부의 투기단속과 19일 대책 발표로 지난달 말까지 3주 연속 상승폭이 둔화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정부 투기단속반과 숨바꼭질을 하던 중개업소가 영업을 재개하면서 오름폭이 확대됐다.
한국감정원이 지난 3일 기준으로 조사한 서울 주간 아파트 가격 역시 0.11% 상승해 전주(0.10%)보다 오름폭이 다소 커졌다.
특히 재건축 단지가 강세로 돌아서며 강남 4구의 아파트값 상승폭이 확대됐다.
실제 강남구 개포 주공1단지는 대책 발표 이후 5천만원가량 하락했던 매매가가 다시 오르며 6·19대책 이전 시세를 완전히 회복했다.
지난달 초 최고 시세가 11억8천만원이던 이 아파트 42㎡는 대책 발표 이후 5천만원이 하락한 11억3천만원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11억8천만원으로 다시 올랐다.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특별히 거래가 많은 것도 아니고 고작 급매물 2∼3개가 팔린 뒤 바로 호가가 대책 발표 전 수준으로 올랐다"며 "6·19대책과 초과이익환수에서 빗겨난 단지인데다 이달 27일 관리처분총회까지 잡히면서 가격이 강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도 112㎡ 시세가 15억2천만∼15억5천만원, 115㎡는 16억∼16억2천만원으로 이달 들어 정부 대책 발표 이전 수준으로 호가가 올랐다.
잠실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정부 대책 영향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영업을 시작하고 보니 112㎡ 급매물이 15억3천만원, 15억3천500만원에 거래된 후 호가가 오르고 있다"며 "이달 19일 재건축 정비계획이 통과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둔촌 주공아파트는 대책 발표 이후 3천만∼4천만원 하락했다가 최근 1천만원 정도 올랐다.
둔촌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거래는 별로 없는데 이주를 코앞에 두고 있어서 가격이 좀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있다. 매수자들은 대체로 관망하고 있지만 매물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102㎡는 6·19대책 발표 전 12억2천만원이었는데 이달 들어 12억5천만원으로 호가가 3천만원 상승하며 오히려 대책 발표 전 시세를 웃돈다. 112㎡도 대책 발표 전 13억9천만원이었으나 현재 14억2천만원으로 올랐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대책 발표 직후 잠시 주춤하는 분위기였는데 집주인들이 이내 호가를 올리고 있다"며 "매수세는 계속 붙는데 매물이 없어 거래가 안된다"고 말했다.
◇ 강북도 "집값 오를까" 기대에 매물 없어…갭투자 문의도 여전
강북 요지의 아파트도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노원구는 상계 주공8단지를 비롯한 재건축 추진 단지와 소형 아파트값이 여전히 강세다.
상계동의 P중개업소 사장은 "주공8단지는 재건축 호재로 가격이 너무 올라 매수자들이 부담스러워한다"며 "최근 거래가 확 줄었는데도 가격은 안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일대에도 실요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매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남가좌동의 S중개업소 사장은 "실수요자들은 계속해서 집을 사겠다고 문의가 온다"며 "가격도 대책 발표 이전과 별 차이 없다"고 말했다.
마포구 일대의 아파트에도 매수 문의가 꾸준하다. 공덕동의 H공인 대표는 "최근에도 전세를 끼고 갭투자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문의가 온다"며 "대책 발표 이후 가격이 내려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집주인들은 매물을 내놓지 않고, 호가도 그대로"라고 말했다.
성동구 옥수동의 M공인 관계자는 "이달 들어 매수자들 문의가 늘었는데 매물이 없어 거래를 못하고 있다"며 "시세차익을 기대해 전세 끼고 사려는 갭투자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번에 청약조정지역에 새로 포함된 경기도 광명시 일대도 매수자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하안1동 J공인 사장은 "대책 발표 후 한동안 조용했는데 지난주부터 다시 실수요자들이 집을 사겠다며 문의를 해온다"며 "최고가 거래도 이뤄진다"고 말했다.
◇ 6·19대책 "약발 다했나" 우려…전문가 "금리 인상, 가계부채대책 등 지켜봐야"
부동산 시장에선 정부의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값이 잡히지 않는 것을 놓고 대책의 효과가 다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LTV·DTI를 10%포인트씩 강화한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며 "부자들은 대출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잠실의 중개업소 대표도 "정부의 투기단속으로 거래가 소강상태였지만 집주인들의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꺾기엔 역부족"이라며 "내년부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시행되면 서울, 특히 강남권 아파트에 대한 희소가치는 더욱 높아지기 때문에 쉽게 가격이 내려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규제를 할수록 집값이 올랐던 참여정부 때의 시장상황이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금 강남 사람들은 현 정부의 부동산 규제 의지와 집값 상승에 대한 문제 의식을 보면서 과거 참여정부 때를 많이 떠올린다. 당시 정부의 강도높은 수요 억제책이 어떤 부작용과 집값 급등으로 이어졌는지 학습을 통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책의 효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이달 들어 가격이 오른 것은 지난달 중개업소 철시로 거래가 중단됐던 것에 대한 일시적인 기저효과라는 것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중개업소가 영업을 못 하는 사이 집을 사지 못했던 사람들이 영업이 재개되자 호재가 있는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조바심을 내고 매수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다음주 이후로는 휴가철 비수기가 이어질 예정이어서 본격적으로 거래가 늘고 가격이 오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과 8월 가계부채 대책,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 증가에 주목하고 있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올해 3, 4분기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여 가구에 그치지만 경기도는 9만여가구에 이른다. 인천지역 입주 물량(1만4천가구)까지 포함하면 수도권 전체적으로 약 12만가구가 하반기에 입주한다.
내년에도 경기도에만 15만5천여가구의 아파트가 입주하는 등 수도권 전체적으로 올해보다 4만여가구 이상 많은 21만가구의 입주 폭탄이 쏟아진다. 이달 중 청약조정지역에 대한 청약규제 강화 방안도 추가로 나온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실수요자들의 주택 매수는 꾸준할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등 추가 대책 가능성이 있고 당장 가계부채 종합대책 발표도 앞두고 있어 5∼6월처럼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수석전문위원은 "아직 정부대책의 효과를 성급히 판단하기엔 이른 감이 있고 하반기 이후에는 입주물량 증가에 따른 가격 압박이 시작될 것"이라며 "조만간 발표될 금리 인상과 가계부채대책, 입주물량 등이 항후 주택시장의 향방을 가를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