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에 근무하는 회사원 안희경(35·가명) 씨는 다양한 수입맥주 중 벨기에 호가든 지역에서 제조되는 것으로 알려진 호가든 맥주 애호가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주점에 가면 안 씨는 산뜻한 과일향이 좋은 호가든 맥주를 시켜먹는다.
최근 안 씨는 직장 동료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철석같이 벨기에산 수입 맥주로 알고 마셔왔던 호가든이 사실은 오비맥주 광주공장에서 만드는 국산 맥주란 것이었다.
반신반의했던 안 씨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호가든 맥주를 산 뒤 집에서 찬찬히 병에 붙은 라벨을 살펴봤다.
라벨 이쪽저쪽을 한참을 살펴봐도 제조지를 찾을 수 없었던 안 씨는 몇 번을 반복해 라벨 구석구석을 뒤진 뒤에야 한 쪽 구석에 아주 작은 글씨로 '광주광역시 북구 양일로'라고 적힌 표시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크게 눈에 띈 것은 맥주병 목부분 라벨에 큰 글씨로 적힌 '오리지널 벨기에 밀맥주'(The Original Belgian Weat Beer)라는 영문 표기였다.
안 씨는 "이래서야 일반 소비자들이 어떻게 국산 맥주인 줄 알겠느냐"며 "그동안 철석같이 벨기에산 수입 맥주로 알고 애용해왔는데, 왠지 배신당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안 씨가 알고 있는 것처럼 호가든은 원래 벨기에산 맥주가 맞다.
하지만 오비맥주가 벨기에 호가든 본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2008년부터 국내에서 판매되는 호가든 맥주는 전량 오비맥주 광주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원래 벨기에산 맥주이기 때문에 아직도 호가든을 벨기에산 수입맥주로 알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하지만 지금은 생맥주를 제외하고는 국내 유통물량의 100%를 오비맥주 광주공장에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오비맥주는 그러나 벨기에 호가든 본사가 전수한 까다로운 양조 공정을 거쳐 국내에서 생산되며 매달 정기적으로 벨기에 본사에서 실시하는 품평회에서 항상 상위권에 랭크될 만큼 맛과 품질이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밀맥주인 호가든은 제조 과정에서 오렌지껍질이나 고수 같은 재료가 들어가는 등 공정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벨기에 본사가 아무 해외공장에서나 생산하도록 허가해주지 않는다고 오비맥주는 설명했다.
이런 엄격한 기준 때문에 해외공장에서는 유일하게 한국 오비맥주 공장에서만 호가든이 생산되고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호가든 같은 저도수 맥주는 신선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2개월이나 걸려 선박편으로 벨기에에서 수입하는 것보다는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 훨씬 신선하고 맛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뒤늦게 호가든이 수입맥주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일부 소비자들은 "알고 보니 호가든이 아니라 오가든이었다"며 실망감과 함께 "유럽 본토에서 마셔본 호가든보다는 맛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벨기에에서 3년간 해외주재원 생활을 했던 회사원 김모(43·서울 양천구) 씨는 "물맛이 달라서인지는 몰라도 현지에서 마셔봤던 호가든과는 맛이 약간 다른 것 같다"며 "소비자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판매자가 원산지를 확실히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오비맥주는 호가든뿐 아니라 원래 미국에서 탄생한 버드와이저도 지금은 수입맥주가 아니라 광주공장에서 생산하는 국산맥주이며 이를 일부러 감출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