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새 역사를 쓰는듯했던 힐러리 클린턴이 '결승선' 직전에 무너졌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클린턴은 8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에게 무릎을 꿇었다.
대선 전날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1∼6%포인트의 우세를 보였던 그녀다.
로이터-입소스가 예측한 당선 가능성은 90%,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내놓은 승리 가능성은 84%였다.
여론조사마다 트럼프와의 격차가 오차범위 안팎의 초접전으로 나타났지만, 결국 클린턴이 신승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던 게 사실이다.
꼬리를 무는 악재와 씨름하면서 살얼음판 같은 우세를 유지해왔지만, 어쨌든 대선 레이스 시종 트럼프에 앞섰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셸 여사의 지원유세는 판세가 민주당에 호의적이지 않는 반증이었지만, 그래도 당이 견고하게 뭉쳤다는 인상을 줬다.
선거 전날에는 클린턴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이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한 미 연방수사국(FBI)가 최종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먹구름이 완전히 걷히는 듯 했다.
2008년 대권에 노크했다가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셨던 클린턴은 이번 두 번째 대권행에서는 승리를 예약한 듯했다.
국무장관직을 통해 국정 경험을 쌓으며 대권을 준비해온데다가, 민주당 경선에서도 '혜성'처럼 나타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스가 본격화되며 시작된 다방면의 언론 검증과, 이메일 공개로 드러난 새로운 팩트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국무장관 재직 시절 사설 이메일 서버로 기밀이 포함된 공무를 처리한 '이메일 스캔들'은 선거 기간 내내 악몽이었다.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남겼고, 이메일 스캔들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진솔하지 못한 해명으로 정직성에 타격을 입었다.
FBI의 무혐의 처분으로 결론지어졌지만, 클린턴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트럼프는 마지막까지 "힐러리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외쳤다.
건강 문제도 불거졌다.
9·11 추모행사에 참석했다가 폐렴과 탈수로 휘청이며 차량에 실려 나가면서다. 2012년 뇌진탕 증세 후 혈전이 발견되면서 한 달여 업무를 중단하기도 했는데 이번 선거전으로 건강이상설이 다시 증폭됐다.
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절반가량은 그가 제공한 건강정보를 믿지 못하겠다며 불신을 보냈다.
돈과 연루된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돌며 부패 문제를 아슬아슬하게 건드렸다.
국무장관 퇴임 후 고액 강연료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미 금융 심장부인 월가(街)와 밀착돼 금융개혁에 무뎌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가족자선재단인 '클린턴재단'이 외국 정부로부터 거액을 기부받고, 기부를 한 해당 정부 인사들을 따로 만나준 것으로 확인되면서 대통령으로서 공정성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떠올랐다.
대선을 11일 앞둔 지난달 28일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선언은 결정타였다.
코미 국장은 선거개입 논란으로 코너에 몰렸고, 클린턴은 "이메일은 문제없다"고 적극적으로 항변했지만, 이때부터 NYT의 클린턴 당선 가능성은 하루에 1%포인트씩 떨어졌다.
클린턴은 박빙 우세를 가까스로 선거일까지 유지하며 무혐의 처분까지 받았으나, 다시 불붙은 트럼프의 추격세를 막기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역전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