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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탈북소년이 본 북한'…北체제 고발 만화 프랑스서 출간

Sept. 26, 2016 - 09:40 By 박세환
지난달 프랑스에서 출간된 탈북자 소재 만화 '김정일의 생일'(L'anniversaire de Kim Jong-Il)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현지 유력 라디오 RTL은 출간 직후 이 책을 '8월의 만화'로 선정했으며 허핑턴포스트 프랑스판도 8월 말에서 10월 초까지 새 문학 시즌을 맞아 프랑스에서 출간된 560권의 책 가운데 주목할 8권에 이 책을 포함했다.

프랑스에서 지난달 출간된 탈북자 소재 만화 '김정일의 생일'(L'anniversaire de Kim Jong-Il) 표지. (사진=델쿠르 제공)

이 책은 기자 출신의 만화 시나리오 작가 오렐리앵 뒤쿠드레와 만화 그림 작가 멜라니 알라그가 3년간 함께 작업해 지난달 말 내놓았다.

'김정일의 생일'에서는 1990년대 평범한 8살 북한 소년 준상이 자기 나라를 낙원으로 생각하다가 북한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과 함께 탈북하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고 있다.

준상의 생일은 2월 16일로 김정일과 같다. 김정일 일가를 제외하고는 생일을 축하하지 않는 북한에서 준상은 매년 김정일 생일에 사람들이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준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프랑스에서 지난달 출간된 탈북자 소재 만화 '김정일의 생일'(L'anniversaire de Kim Jong-Il) 속 장면. (사진=델쿠르 제공)
준상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으며 남한과 미국 제국주의자들을 증오해야 한다고 배우며 자란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아버지가 남한 출신이라 북한에서 신분 차별을 받는 데다가 1990년대 북한에 대기근까지 닥치면서 당시 많은 북한인처럼 살아남기 위해 중국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준상의 가족은 탈북 과정에서 붙잡혀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감금돼 지옥을 경험한다. 천신만고 끝에 중국으로 넘어갔으나 함께 탈북한 누나가 인신매매단에 붙잡히는 등 탈북자들의 고난이 만화로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이 책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그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평범한 북한인의 일상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대기근 당시 어린이들이 쥐를 잡아먹기 위해 뒤쫓거나 거름으로 사용할 인분을 수거하는 모습, 김정일 그림을 그렸다가 교사에게 들켜 자아비판 하는 학생 등 북한 주민의 평범한 삶을 통해 북한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책을 쓴 만화 시나리오 작가 뒤쿠드레와 만화가 알라그와 인터뷰는 23일(현지시간) 파리 시내에 있는 이 책 출판사인 델쿠르(Delcourt) 본사에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문답 요지.

--프랑스와 큰 관계도 없고 멀리 떨어진 북한의 인권을 주제로 한 만화를 낸 계기는.

▲(뒤쿠드레) 우연히 프랑스어로 번역돼 나온 탈북자 신동혁의 북한 정치범수용소 증언집 '세상 밖으로 나오다'를 읽고 북한 문제에 관심이 생겨 탈북자 책들을 찾아봤다. 이후 북한인의 일상은 어떤지, 8살 어린이는 북한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써보고 싶었다.

--북한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책 내용은 어떻게 알고 쓰게 됐나.

▲(뒤쿠드레) 북한에 가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 책에서 지어낸 부분도 하나도 없다. 모두 탈북자들의 책에 나오는 증언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탈출한 신동혁의 책이나, 탈북자 강철환의 요덕수용소 생활수기 '수용소의 노래' 등 여러 탈북자 책을 프랑스어로 읽고 이 책 시나리오를 썼다. 이 책에는 새로운 사실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 북한을 보는 시각만 새로울 뿐이다. 프랑스 얘기가 아니라서 행여나 내용에 틀린 부분이 없는지 조심했다.

--북한의 인권 탄압을 8살 소년의 입을 빌려서 말하고 있는데 주인공을 어린이로 택한 이유는.

▲(뒤쿠드레, 알라그) 북한 문제를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싶었다. 북한의 선전은 아주 거대한 거짓말이지만 어린이는 이를 다 믿는다. 북한 선전은 매우 정교하고 효과적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어수룩하기도 하다. 북한 선전의 허위를 조금씩 드러내기에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주인공이 개인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도 어린이 주인공이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북한 인권 문제와 함께 대기근, 굶주림 문제가 책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데.

▲(뒤쿠드레) 탈북자 증언집을 많이 읽었는데 언제나 1990년대 대기근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끔찍한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아주 영리한데'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많았다. 내 책에 담긴 내용을 예로 들자면 아이들이 먹을 게 떨어져서 쥐를 잡아먹으려고 뒤쫓는 장면이 있다. 한 어린이가 쥐를 발견하고 "잡았다. 죽이자"라고 말하자 친구가 "아직 죽이지 말자. 쥐의 집에는 밀 등 식량이 있을 것이니 살려준 뒤 뒤따라가서 쥐와 밀을 함께 먹자"고 말한다.

--학교나 가정 등 북한인의 일상적 삶의 모습, 거리 풍경, 요덕수용소 내부 모습 등은 자료가 많지 않아 그림으로 표현하기 어렵지 않았나.

▲(알라그) 수용소 모습에 대한 영상이나 사진 자료는 거의 구할 수 없어서 표현이 어려웠다. 그래서 흑백 그림으로만 처리했다. 하지만 북한 일상 모습을 담은 이미지 자료는 적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외국 관광객이 북한에서 몰래 찍은 사진도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어서 찾아봤다.

--주인공 준상이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결국 중국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16살이 돼 중국에 도착한 준상은 북한에 적대적으로 변해 있는데.

▲(뒤쿠드레) 준상은 북한에서 몰래 중국 TV를 보면서 북한 정권의 선전이 허구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요덕 수용소 생활을 통해서 북한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북한의 실체를 깨달으면서 더욱 큰 배신을 느끼게 된 것이다.

--탈북자 이야기는 무거운 주제인데 이런 주제를 청소년 장르로 여겨지는 만화로 다루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알라그) 프랑스에서는 만화가 청소년과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즐기는 예술 장르이다. 그리고 만화를 통해서 무거운 주제를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책의 전반부는 컬러 그림이지만 후반부로 넘어가면 흑백으로 바뀌는데 그렇게 한 이유는.

▲(알라그) 준상의 세계가 단절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가 생각했던 세계가 무너진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북한에는 파스텔색이나 장미색, 녹색 등 행복을 상징하는 색깔 건물이 많다. 북한 체제에 속해 있을 때 경험한 이런 모습은 컬러로 표현했고 준상 가족이 탈북하다 국경에서 붙잡혀서 요덕 수용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흑백으로만 그렸다. 수용소에서 그의 삶은 공포로 어두워지게 된다. 흑백이 진실을 드러내는 색이라고 생각했다.

--북한이 인권 문제와 주민의 굶주림은 신경 쓰지 않고 핵무기 개발에만 열중하고 있는데.

▲(뒤쿠드레) 북한 정권은 인터넷 때문에 끝날 것이다. '아랍의 봄'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재정권은 결국 망했다. 인터넷, 휴대폰 등이 보급되면서 조금씩 북한 정권은 망해갈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 책을 번역·출간할 계획이 있는가.

▲(뒤쿠드레) 한국 에이전시와 접촉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 번역·출간할 계획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나왔으면 좋겠다. 한국으로 넘어간 많은 탈북자가 내 책을 보고 "이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