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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턴다’ 제대로 털린 인턴의 속사정

Nov. 10, 2015 - 16:35 By KH디지털2

야근부터 룸살롱 접대, 성추행까지…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불합격’ 통보


새벽 5시 반, 동이 트기도 전 그녀는 토스트를 하나 입에 문 채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직은 정장이 어색한 앳된 모습의 그녀는 사뭇 도도하게 여의도 역에 내려 금세 회색 빌딩숲 사이로 사라진다. 

그녀의 하루는 팀장님이 좋아하는 블랙커피를 내려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업무 중에 졸거나 딴 짓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감시자이기 때문. 회식자리에서는 블루스를 추자는 부장님의 비위를 맞춰야 하며, 점심때엔 재미없는 차장님 개그에도 배꼽을 잡으며 최고의 리액션으로 화답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그녀에게 올가을의 시작은 유난히 더 추웠다. 열심히 노력했고,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던 그녀였지만 그녀가 받은 문자에는 “뛰어난 역량에도 귀하를 채용할 수 없게 되어 아쉽다”라는 말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123rf.com)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 5명 중 1명(21.2%)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인턴•수습 등의 용어로 불리며 ‘교육생’이라는 명목으로 최저임금 이하를 받으며 일한다. 바늘구멍과도 같은 취업의 문을 뚫으려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인턴에 지원한 셈이다.

작년 모 공기업에 청년 인턴을 통해 합격한 최씨는 “잦은 야근에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며 전환평가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받고자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인턴들 간에 보이지 않는 기 싸움과 경쟁도 한몫한다”며 서로 경쟁하듯 야근을 불사하고, “야근 수당은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을 더욱 옥죄는 것은 두 어깨를 누르는 부담감과 걱정이다. 최씨를 비롯해 ‘전환형 인턴’을 경험한 이들은 대부분 “불안감”이 제일 힘든 점이었다고 말했다. 

6개월의 시간을 허비하기엔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다른 회사 면접에서도 전환이 안 된 이유를 물어볼 게 뻔하기 때문. 게다가 2년마다 토익 등 각종 자격증은 만료되고, 부모님과 친척들의 압박도 어깨를 짓누른다. 전환 탈락은 떠나는 자에게만 가슴 아픈 일이 아니다. 이들은 인턴 전환에 고배를 마신 후 괴로워하는 동기를 보며 괜한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여성직원들에게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B 유통업체는 정규직 직원들이 남성 인턴들과 룸살롱을 방문했으며, 모 금융기업에서는 여성인턴들만을 모아놓고 남자 선배가 따로 회식을 하기도 했다. 한 중견 건축회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장모씨는 회사의 이사진 중 한 명이 회식자리에서 음담패설을 하고 자신의 몸매에 대해 불쾌한 지적을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중 그 누구도 사측에 항의할 수 없었다. 그들은 상사의 한 마디에 생사가 걸려 있는 ‘인턴’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는 11명의 영업직 인턴사원을 모집해 전원 탈락시킨 한 소셜커머스 업체가 화제가 됐고, 그 이후에도 무급인턴, 지나친 야근 강요 등이 회자되며 몇몇 기업의 이들에 대한 부당처우가 논란이 됐었다. 올해 6월 모 금융사는 신입 인턴 공채에 90~100% 전환을 약속했지만, 경영실적 악화로 이 중 절반이 넘는 인원을 퇴출했다. 높은 전환율을 자랑하는 일명 ‘금턴’ 화장품 회사 또한 졸업자와 2016년 2월 졸업예정자를 인턴으로 선발 후에 “바로 근무현장에 투입될 수 없다”라는 이유로 졸업예정자에게 전원 불합격 통보하기도 했다.

지난 2013년에는 대기업의 인턴사원이 되어 친구들과 가족들의 축하를 한몸에 받았던 청년이 근무를 시작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자신의 자취방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과도한 실적 압박이 그 원인이었다고.

정부는 지난 9월 청년 실업률이 7.9%를 기록해 올해 들어 최저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청년들이 인턴으로 취직해 일주일에 한시간만 일하더라도 청년실업률은 떨어지고 고용률은 오르기 때문. 이 중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인턴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청년들은 사상초유의 취업난에 내몰려 실낱같은 희망으로 “전환형 인턴”에 도전한다. 그러나 이들은 과도한 업무량과 적은 임금으로 착취당하고, 또다시 치열한 취업 전쟁터로 내몰릴 뿐이다.

코리아헤럴드 고지선 인턴기자 (jiseonk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