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끝난 '가을 면세점 대전'에서 신세계와 두산이 사실상 승리하며 서울 시내 면세점 시장에 나란히 첫 발을 디뎠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면세점 제도 개편 결과에 따라서는, 면세점 사업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특히 신생업체의 경우 자리를 잡을 때까지 '황금알'이 아닌 '승자의 저주'를 떠안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수수료 '100배 인상'까지 거론…"이익 기대 말라는 얘기"
정부는 지난 9월초부터 기획재정부·관세청·공정거래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부처 관계자들로 '면세점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운영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 관세법 개정안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여러 의견을 종합하면 우선 면세점 운영 업체들로부터 정부가 걷는 수수료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특정 소수 업체에 면세사업 이익이 집중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권 선임연구원은 최근 관련 공청회에서 현행 '매출액의 0.05%' 수준인 면세점 특허수수료율을 10배(0.5%)로 올리거나 업체 매출액 규모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차등 부과 기준으로는 ▲ 매출액 1조원 이상 매출액의 1.0% ▲ 5천억∼1조원 0.75% ▲ 5천억원 미만 0.5% 등을 예로 들었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아예 대기업의 면세사업 특허수수료를 현재의 100배인 매출액의 5%, 중소기업의 경우 1%로 늘리는 내용의 관세법 개정안까지 발의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기존 또는 신생 사업자 모두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연간 약 2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롯데면세점 소공점을 예로 들면, 현재 수수료율(0.05%)에 따르면 한 해 10억원만 내면 되지만 0.5%로 뛰면 무려 100억원을 납부해야한다. 더구나 홍 의원안 대로라면 한 해 수수료로만 1천억원에 이를 수도 있다.
현재 전국 시내 17개 면세점의 영업이익률이 평균 4~5%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면세점 운영으로 이익은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수수료가 늘어나면 결국 유통업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품 가격을 올리는 것 뿐"이라며 "그러면 국내 면세점의 글로벌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 관광 사업 자체가 죽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새로 신규 면세점을 맡은 업체 관계자도 "면세점은 직접 물건을 사서 파는 구조이기 때문에 재고 부담이 크고 초기투자비용도 수천억원이 들어간다"며 "이런 상황에서 면세점 수익을 무조건 높은 수수료 등을 통해 환수해버리면 업체가 면세사업의 기본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아예 면세점 영업권을 가장 많은 특허수수료를 써 낸 업체에 주는 '완전 입찰'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관영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도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Yonhap)
지난 2월 치러진 인천공항면세점 입찰과 같은 방식을 전면 도입하자는 얘기인데, 이 제도 역시 수익성 측면에서 업체들로서는 달갑지 않다. 롯데·신라·신세계 등이 높은 수수료를 제시해 결국 인천공항에 입점했지만, 큰 수수료 부담 때문에 영업비용을 빼면 사실상 적자 상태인 것과 같은 이유이다.
◇ 독과점 업체 참여 제한·진입장벽 완전 철폐론
아울러 "면세점 시장을 소수 업체가 독점하고 있다"는 여론을 의식해 독과점 지위 업체들을 아예 신규 면세점 특허 신청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현행 면세점 독과점 기준은 '면세점 특허(점포) 수 기준으로 전체 시장의 60% 이상'이지만, 앞으로는 특허 수가 아닌 매출액 기준으로 일정 비율을 넘어선 업체가 새 면세점을 가질 수 없도록 막자는 주장이다.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구체적 제한 기준으로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되거나 면세점 시장의 매출액 비중이 30%를 넘는 경우'를 제안하기도 했다.
만약 관세법 개정안에 이 내용이 포함되면, 현재 매출 기준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르는 롯데(50%)와 신라(30%)는 더 이상 신규 면세점을 늘릴 수 없게 된다.
당연히 업계 '빅2' 롯데와 신라는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특혜를 받은 게 아니라 시장에서 다른 업체들이 도태돼 자연스럽게 독과점 지위에 올랐고, 막대한 투자 등을 통해 면세사업 역량을 키워온 결과인데 이제와서 손발을 묶는 게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서울 시내 면세점 수는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 등 대형 국제행사를 전후로 외국인 관광객 쇼핑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1980년대 후반 29개까지 불었다가 작년까지 20여년 사이 무려 17개가 영업난 등으로 사라졌다.
아예 면세점 진입 장벽 자체를 없애고 신고제 등으로 전환해야한다는 '완전 자유경쟁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기존 사업자들은 "듀프리 등 세계적 면세점 사업자들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반면, 우리는 경쟁력 갖춘 사업자의 대형화를 지원해주지는 못할망정 독과점 논란을 빌미로 끊임없이 여러 업체들에 쪼개주는 방안만 강구한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부 경쟁력이 월등한 시장 선두업체들의 경우 자유 경쟁 체제에서 '생존' 가능성이 큰 만큼, 진입 장벽 철폐가 오히려 독과점 논란없는 성장을 보장하는 차선책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5년짜리 면세특허' 논란…정부 "아직 개정 검토 안해"
지난 14일 롯데면세점 잠실점(월드타워점)과 장충동 SK워커힐이 탈락하자 또 하나의 쟁점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현행 '5년'인 보세판매장(면세점) 영업특허 기간이다.
과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면세점 특허가 10년마다 자동 갱신됐으나, 2년전 대기업 독과점 반대 기류 등의 영향으로 관세법이 바뀌면서 롯데·SK 등 기존 업체도 5년마다 특허권을 놓고 신규 지원 업체들과 경쟁을 벌여야하는 처지가 됐다.
'5년 주기 특허 재승인' 제도는 법의 취지처럼 한 업체에 장기간 독점적 지위나 특혜를 주는 것을 막는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투자와 영업 노하우 등을 바탕으로 탁월한 영업 실적을 내는 업체일지라도 5년마다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운 경쟁을 치러야하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의견이다.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제대로 갖추는데 최소 5년이상의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 면세점의 주인이 5년만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합리한만큼, 10년이상으로 특허 기간을 다시 늘려달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번에 탈락한 롯데 월드타워점의 지난해 매출(4천820억원)은 서울 시내 면세점 가운데 세 번째로 많고 지난해 이전·확정 과정에서 3천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까지 투자됐지만, 결국 월드타워에 자리를 잡은지 1년만에 문을 닫게 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면세점 특허기간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긴 일본은 10년(실제로는 6년 단위 갱신)에 이르는 반면, 홍콩과 말레이시아처럼 1~2년만 특허를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5년이 세계적으로도 평균적 기간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면세 사업권을 5년마다 재허가 하는 규정은 2013년 의원 입법으로 도입된 것"이라며 "5년으로 개정돼 시행된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재개정 여부를 아직 검토해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기간 5년이 짧은 것은 아니지만, 외국의 경우 업체간 경쟁이 우리나라만큼 치열하지 않기 때문에 면세 사업자가 크게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