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공작 조직과 협력해 북한에서 필로폰을 제조한 일당이 뒤늦게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등 국내 주요 반북 인사를 암살하려는 시도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백재명 부장검사)는 국가정보원·경찰청 등과의 공조 수사를 통해 북한을 드나들며 필로폰을 제조하고 반북 인사 암살을 기도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로 방모(69)씨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0년 6∼7월 북한 황해북도 사리원 연락소 내에 필로폰 제조설비를 차려놓고 70㎏의 필로폰을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사리원 연락소는 남파공작원 파견 기지로 알려졌다.
이들은 1996년께 이모(2004년 10월 사망)씨의 소개로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해 필로폰 제조를 모의했다. 방씨 등이 필요한 시설·원료·기술을, 북한은 부지를 각각 제공하고 제조한 필로폰은 절반씩 나누기로 했다.
이씨는 필로폰으로 '외화벌이'를 하려는 북한 공작원의 요청을 받고 마약 전과가 있는 방씨 일행을 연결해준 것으로 조사됐다.
방씨 등은 이후 여러 차례 북한 작전부 소속 전투원들과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압록강을 넘나들며 중국에서 각종 필로폰 장비와 원료를 들여왔다. 부산-나진 간 화물선 항로를 활용해 국내에서 직접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도 했다.
이들은 단속이나 처벌 위험이 없는 북한에서 필로폰을 제조·판매해 목돈을 벌겠다는 속셈이었으나 판매망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북한도 애초 약속대로 이들로부터 35㎏ 상당의 필로폰을 넘겨받았으나 판매에 성공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북한이 부족한 외화를 벌충하고자 필로폰에 손을 댄다는 정보가 많았는데 수사를 통해 북한 대남공작조직이 필로폰 제조에 직접 관여한 사실을 밝혀낸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북한을 드나드는 과정에서 공작원에 포섭돼 대남공작에까지 투입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검찰이 밝혔다.
특히 일행 중 하나인 김모(63)씨는 2009년 9월 황 전 비서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1년간 10차례 북측과 실행 방안을 협의했다. 이 공작은 2010년 10월 황 전 비서가 노환으로 사망하면서 종결됐다.
김씨는 2009∼2011년 수도권의 열병합발전소 위치, 최신 지도책, 한국군이 보유한 무기체계를 망라한 무기연감 등의 정보도 북한 공작원에게 넘겼다.
이 공작원은 "당의 높은 분에게 선물해야 한다"면서 김씨를 시켜 국산 체지방측정기와 공기주입식 안마기를 두 대씩 구입하기도 했다.
김씨와 함께 기소된 황모(56)씨도 2004년 4월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국내에서 반북 활동을 해온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씨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하지만 북한 측이 외교 분쟁을 우려해 막판에 계획을 철회하면서 지령이 실행되지는 않았다.
검찰 등은 방씨 일행의 과거 행적에 대한 첩보를 입수해 내사를 진행하던 중 최근 귀순한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고 이번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