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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8월 사망…딸이 유골함 들고 다녀가"

Oct. 22, 2015 - 11:10 By KH디지털2

사망설이 꾸준히 나오던 천경자 화백이 지난  8 월 사망했으며 천 화백의 딸 이혜선 씨가 지난 여름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 을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년 91세.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천 화백의 딸 이씨가 지난 8월20일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씨 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당시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 고 들었다"며 "개인적인 일이라 본인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 했다.

이씨의 지인은 이날 연합뉴스에 이씨로부터 "병석에 계시던 천 화백이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몸 상태가 안 좋아졌으며 지난 8월6일 새벽 의사가 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지인은 "천 화백의 시신은 화장했고 뉴욕 성당에서 장례를 치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씨가 "같은 달 서울시에 협조를 요청한 뒤 서울시립미술관에 있는 '천경자 상설전시실'과 그의 작품이 보관된 수장고를 다녀왔다"며 "어머니가 아끼는 작품이 시립미술관에 있으니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언론에 관련 사실을 알리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고 그는  말했다.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큰딸 이씨의 간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와 접촉을 끊은 천 화백은 의식은 있는 상태라는 것이 이씨를 통해 그동안 미술계에 알려져왔다.

미술계에선 천 화백이 길게는 10여 년 전 이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확인할 수 없는 추측성 소문이 무성하게 돌았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의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했고 이씨는 이에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예술원은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 화백의 의료 기록 등을 요구했으나 이씨는  이런 요구가 천 화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 의사를 알 수 없는 예술원으로선 탈퇴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에선 미술 분야 회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예술원은 그간 천 화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직접적인 확인은 하지  못했다.

천 화백은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딸 이씨는 천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했던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됐다며 93점을 반환할 것을 2013년 요구하기도 했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경자는 유복한 어린시절을 거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때 혼담을 피해 일본 유학을 떠나 화가의 길을 시작했다.

천 화백은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류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고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넓게 활동했던 '스타' 화가였다.

여인의 모습을 그린 '미인도'를 둘러싸고 1991년에 일어난 위작시비는 천 화백 노년의 최대 시련으로 심적 충격 속에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작품에는 여인의 고독과 애틋한 사랑,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 이국에 대한 동경, 자신을 지탱하려는 나르시시즘이 복합적으로  묻어 있다는 평이 뒤따른다.

천 화백의 대표작인 '길례언니'(1973), '고'(孤)(1974년), '내 슬픈 전설의  22
페이지'(1977),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 '황금의 비'(1982) 등은 모두  몽환적이고도 섬뜩한 눈빛의 여인이 등장하는 작가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일간지에 연재를 했고 '언덕 위의 양옥집', '아프리카 기행 화문집' 등 수필집과 단행본 10여권을 냈다. (연합)


<관련 영문 기사>

Painter rumored dead passed away months ago: museum

A famed artist, who has long been rumored to be dead, passed away several months ago, with her daughter having been seen carrying an urn containing the painter's remains, a head of a local museum said Thursday.

Kim Hong-hee, general director of the Seoul Museum of Art, said the daughter of Chun Kyung-ja visited the museum several months ago with the urn of her mother's ashes. Kim added that she didn't get a chance to meet the daughter Lee Hye-seon.

"I was told Lee visited our museum, and she asked us not to talk publicly about her visit," Kim said. "Since this is a private matter, I thought she would find the appropriate time to do so herself."

Earlier, the Chosun Ilbo quoted Lee as saying that Chun's health had deteriorated since the U.S. Thanksgiving Day last November, and she'd died in the early hours of Aug. 6 in New York.

According to the newspaper, Lee cremated Chun's remains and held a quiet, low-profile funeral at a New York Catholic church.

Famous for her depictions of flowers and women from the 1960s to the 1980s, Chun reportedly suffered a cerebral hemorrhage in

2003 and remained bedridden in Manhattan until her passing.

Chun had been rumored to have died as many as 10 years ago.

Last year, the National Academy of Arts temporarily stopped paying Chun her membership benefits on the grounds that it couldn't determine whether she was still alive.

In protest, Lee withdrew Chun's membership on behalf of her mother. The academy demanded official medical records, but Lee shot back that such attempts amounted to defamation of Chun's character.

The academy, however, didn't process Lee's request for a withdrawal of Chun's membership. Chun remains listed as a member of the academy on its website.

Chun left for New York in 1998 after donating 93 paintings to the Seoul Museum of Art. In 2013, Lee, the daughter, demanded the museum return all of them to her possession, saying the museum's negligence had damaged the paintings.

Chun abruptly retired from painting in 1991, when she faced plagiarism charges. (Yonh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