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으며, 그가 문학을 하게 된 이유이 기도 하다.
문단 데뷔 40주년이었던 지난해 문예지 '문학의문학'에 실린 대담에서 그는 "6.25가 없었어도 내가 글을 썼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며 6.25가 안 났으면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6.25 때 "빨갱이로 몰렸다가 반동으로 몰렸다가 그러면서 부대낄 때 얼마나 이상할 일을 다 겪었겠느냐"며 힘든 시기를 겪고 남다른 경험을 하면서 "이걸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언젠가는 이걸 쓰리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7월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도 그는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 할 것 천지였다"고 되뇐다.
"6·25가 난 해도 경인년이었으니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 남아 그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대학 중퇴 후 고인은 미8군의 PX에 취직해 일하다가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박 화백과의 만남은 훗날 그의 데뷔작인 '나목(裸木)'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은 전쟁 중 PX에서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손수건에 초상화를 그려주던 박수근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1953년 결혼하고 여러 자녀를 두고 화목한 가정생활을 하던 작가는 1970년 불혹의 나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이 소설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후 그는 6.25전쟁과 분단 문제에 천착하면서 물신주의와 여성 억압에 대한 현 실비판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다.
데뷔작 '나목'으로 주목받은 그는 '세모'(1971), '부처님 근처'(1973), '카메라 와 워커'(1975), '엄마의 말뚝'(1980)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전쟁의 상처를 문학으 로 형상화했다.
1980년대에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 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의 장편소설에서 여성의 억압을 다룬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여성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주목받았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는 큰 슬픔을 겪고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 자전적인 소설 등을 통해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면모를 보여준다.
2000년대 '그 남자네 집' '잃어버린 여행가방' '친절한 복희씨' '세가지 소원' 등의 장편과 산문집 '호미', 동화집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등의 작품에는 오랜 연륜과 성찰에서 나오는 따뜻한 사유가 묻어난다.
구리시 아차산 자락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지내온 고인은 "기력이 있을 때까지 는 계속 글을 쓸 것"이라며 "나이가 들면서 예전처럼 빨리 쓰지는 않지만 좋은 문장 을 남기고 싶어서 공들여 쓴다. 지금도 머릿속으로 작품 생각을 하면 뿌듯하고 기쁘 다"고 식지 않는 창작의 열정을 보였으나 지난해 가을 담낭암 진단을 받았다.
10월 수술 후 치료를 받아온 고인은 지난해 말 병세가 악화돼 1주일간 입원한 뒤 차도를 보이는 듯했으나 22일 새벽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가까워져 오는 죽음을 내다보듯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라며 죽음을 초월한 모습을 보였던 고인은 그렇게 가보지 못한, 더 아름다운 길을 찾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