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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두 달…바뀐 것 그리고 바꿔야 할 것

March 29, 2018 - 09:25 By Yonhap
사회고위층부터 가족·애인 고발까지…일상으로 번진 '미투'

'90년대생 김지훈' 등 반발 움직임도…전문가 "연대와 제도개선으로 가야"

'지금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터져 나오지 않은 곳이 있다면 그곳이 제일 곪아 터진 조직일 수 있다.'

코끝이 아릴 만큼 추위가 매섭던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두 달이 지나 벚꽃이 필 무렵이 돼서도 끊이질 않고 있다.

불균형한 젠더 권력에 기반을 둔 성범죄가 그간 한국 사회에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사이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개입하고, 조직 내부에서 징계절차를 밟는 등 여러 정화 움직임이 일었지만, 여기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두 달간 이어온 미투 운동을 계기로 드러난 병폐를 제거하는 데 만족할 게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대의식과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 정치인·예술계 거장 '와르르'…일상으로 번진 '미투'

정치인부터 시작해 예술계 거장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알 법한 유명인사들은 미투 운동으로 그 이면이 드러나면서 추락했다.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김지은 전 충남도 정무비서 등 부하 직원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던 정봉주 전 의원은 자신에게 제기된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다 거짓 해명이 드러나며 지방선거 출마는커녕 정계를 떠나는 신세가 됐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고은 시인은 후배 문인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잇따르면서 국내 문단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 연극연출가 이윤택은 단원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고, 제자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를 받던 배우 겸 교수 조민기는 경찰 수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학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교수들의 성추행·성폭행 폭로도 하루가 멀다고 이어지고 있다.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 '○○대 대나무숲'에는 교수의 만행을 폭로하는 장이 되었고, 학교는 즉각 조사에 들어가는 등 징계절차를 밟고 있다.

성폭행 피해고발은 공적 영역에 국한돼 있지 않았다. 어디 말할 데도 없이 마음속에만 담아 놨던 가족, 친족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학교 동급생에게 당한 일, 대학 선배와 애인에게 당한 일 등 뚜렷한 권력관계에 바탕을 두지 않은 피해 사연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남자라서 억울하다"…'90년생 김지훈' 등 반발 움직임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고위직에 진출하면 '유리 천장을 깼다'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기득권층은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남성중심으로 형성된 권력구조를 깨부수려는 미투 운동은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펜스 룰'의 부상이다.

펜스 룰이란 성 추문에 휩싸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여성들과 거리를 두겠다는 원칙으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과거 발언에서 유래했다.

이를 두고 최소한의 방어수단이라는 옹호와 함께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펜스 룰은 '여성 없이도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성차별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온라인에서는 여성이 받는 차별을 담아낸 소설 '1982년생 김지영'을 패러디한 '90년생 김지훈'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역차별을 호소하는 남성들도 나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미투, 페미니즘, 남성차별을 미러링 한다'는 '유투(Youtoo)' 계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계정 관리자는 성범죄 무고로 인한 피해가 심하다거나, 왜 남성의 군 복무만 의무화하느냐와 같은 주장을 올리고 있다.

권력형 관계에서 일어난 성범죄가 아니라면 '미투' 운동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일부 피해 사례를 깎아내리는 '미투 감별사'도 등장했다.

익명의 힘을 빌려 용기를 낸 피해자에게는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거짓말을 하는 것 아니냐'며 2차 가해를 서슴지 않기도 한다.

◇ "연대 확장, 사법체계 개선으로 이어져야"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파장은 그야말로 혁명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남성 위주로 굴러왔던 사회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미투 운동이 끌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면 위로 드러난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다 보니 여성연대만을 강조하거나, 성 대결로 몰고 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재훈 교수는 "한국 사회가 1970∼1980년대 민주화를 거치며 부당한 권력관계를 해소해 왔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남자들만의 민주화였다는 경종을 미투 운동이 울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투 운동을 계기로 남녀 사이에 존재한 불균형한 권력관계를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미투 운동이 여성만의 연대로 흐를 게 아니라 통찰·반성을 하는 남성과 연대로 확장돼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90년생 김지훈', '유투'와 같이 미투 운동에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남성도 일부 있지만, 대다수 남성은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정 교수의 분석이다.

미투 운동이 성폭력 피해고발에 그치지 않고 사회구조 변혁으로 이어지려면 실질적인 제도개선으로 나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는 피해자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남성 중심적으로 짜여 있는 사법체계 손질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예를 들어 강간죄 성립 여부를 따질 때 피해자의 항거 여부를 기준으로 삼을 게 아니라 동의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김지영 교수는 "현행법은 피해 여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증거를 수집해서 강간당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피해자를 '꽃뱀' 혹은 '무고 가해자'로 내모는 구조로 돼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망설임 없이 신고할 수 있게끔 성범죄 피해를 폭로한 순간부터 사법적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원스톱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윤김지영 교수는 제안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