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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질문ㆍ8시간 대기' 여전한 채용 갑질

By Yonhap
Published : March 10, 2019 - 09:41

"참고 또 참았어요. 모욕적인 질문이라도요. 저는 구직자니까요.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20대 구직자 이수민(가명)씨는 지난해 한 스타트업 기업에 지원해 면접 통보를 받았다. 회사 홈페이지에 걸린 매력적인 홍보 문구에 끌려 망설임 없이 지원했으나 기대감은 면접 당일 어그러졌다. 단순히 압박 면접 수준이 아니었다. 면접관은 "성격이 왜 그러냐", "(말을) 빨리 좀 끝내라" 등 고압적이거나 비꼬는 듯한 질문을 잇달아 던졌다. 이씨가 최근 언론사 입사 준비 카페인 '아랑'에 올린 내용이다.



(연합뉴스)


이씨는 연합뉴스 취재에 "면접 당시 받았던 모욕은 지금까지도 상처로 남아있을 정도로 크지만 구직자는 채용시장에서 '절대 을'이기에 그 회사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면접시 구직자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업무와 무관한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하면 안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온 지 7년이 지났고 채용 과정에서 구직자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어느 정도 확산했다. 그러나 채용 현장에서 갑질 면접으로 인한 피해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 "구직자 3명 중 2명 갑질 피해"…취업난에 '냉가슴'

2년 전부터 IT 업계 취업을 준비한 이모(27)씨는 최근 겪은 면접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이가 있는데 결혼 언제 할 거냐"는 등의 사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던 면접관 때문이다. 그는 "면접 당시에 불쾌한 내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며 "행여나 동종 업계에 '블랙리스트' 구직자로 오를까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구직자 3명 중 2명은 이씨와 비슷한 일을 겪는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청년희망재단이 2016년 채용 면접 경험이 있는 19∼29세 청년 1천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면접 실태조사'에 따르면 64.8%가 '면접 과정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면접장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질문'이 26.0%로 가장 많았고, '면접관 태도 불량'(19.2%), '면접 시간 문제'(13.2%)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런 경험을 겪은 구직자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면접 갑질을 금지해 달라'는 글이 익명을 빌어 올라왔다.

대기업 공채에 응시했다고 밝힌 작성자 A씨는 "공지대로 오후 1시40분에 면접장에 도착했지만 긴 대기 시간 끝에 면접이 끝난 것은 오후 8시가 넘어서였다"며 "면접관들은 사과 한마디 없어 '면접하다 보면 다 그럴 수 있다'는 말뿐이더라"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취업난 속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말 한마디 못하고 참아야 하는 마음이 너무 비참했다"면서 "구직자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덧붙였다.

취업사이트 인크루트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면접 갑질'을 당한 구직자의 절반가량은 "떨어질까 봐 불쾌한 마음을 숨기고 면접에 임했다"고 밝혔다. "불쾌감을 표현했다"고 밝힌 면접자는 9%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면접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취업시장의 불균형을 꼽는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취업난이 심화하면서 구직자가 몰리다 보니 기업이 면접 환경을 개선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이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 체감실업률을 보여주는 청년층 고용보조지표3(확장실업률)은 지난해 22.8%로 2015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취업자를 보호할 뚜렷한 보호망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권 교수는 "근로자와는 달리 구직자는 기업과 아무런 관계 형성이 안 된 상태"라며 "이런 애매한 관계 때문에 채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 구직자를 보호할 법률 등의 장치가 마땅치 않다"라고 지적했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위원은 "규제를 마련하거나 처벌을 하려면 먼저 피해자의 신고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 위원은 "일종의 밀폐된 공간인 면접장의 특성도 신고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라며 "가해자가 '난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면 증거 확보 자체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 기업 "어쩔 수 없는 부분도"…전문가 "구직자 보호책 마련해야"

면접관 등 채용 관계자들은 구직자의 불만은 공감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입장이다.

과거 인천의 한 중소기업에서 인사담당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한모(37)씨는 "많은 지원자를 한꺼번에 관리하다 보니 세심하게 신경 쓰기 힘들다"면서도 "면접 당일 잠적하거나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는 구직자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한 구직사이트가 면접 경험이 있는 취업준비생 1천2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명 중 1명 이상은 '사전 연락 없이 면접에 불참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아랑' 카페에서 갑질 면접을 토로한 이수민씨의 면접관이었던 김모 대표는 당시 상황에 대해 "구직자가 오해한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고압적인 태도로 질문한 적도 없었으며 면접자가 불쾌할 만한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 기업은 일반 기업보다 인재 구하기가 더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면접을 훨씬 더 신중하게 진행한다"며 "지원자 한사람 한사람이 중요하고, 더 나아가 우리 회사의 잠재적 고객이라 생각하는데 (구직자의 의견은) 말도 안된다"고 해명했다.

기업 측도 할 말이 있다고 하지만 갑질 면접에서 피해를 봤다는 구직자가 여전한 상황에서 이들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구직자들이 마음 놓고 피해 경험을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와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따라야 할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권순원 교수는 "정부가 관리하는 '채용 갑질 고발 센터'를 만들어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기업의 채용 과정을 감독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인임 연구위원은 "정부 차원에서 뚜렷한 면접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기업이 이를 준수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지난 2017년 8월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면접관 등 회사 측이 면접 중에 구직자에게 성희롱, 인신공격 등 모욕적인 언행을 하는 것이 금지된다. 또한 구인자 측이 면접 내용을 녹취하고 보관하는 것이 의무가 된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송 의원 측은 "최저임금이나 근로 시간 단축 등 다른 노동 현안에 밀려 이 법안에 대한 논의 자체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전하며 "취업준비생의 인권 보호책이 어서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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