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탄핵당한 지 17일 만에 구속위기에 몰리게 됐다.
검찰이 27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에 이어 영장 실질심사를 받는 첫 대통령이라는 오명까지 안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 심사)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과 마찬가지로 수의를 입고 법원의 결정을 기다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때 ‘선거의 여왕’으로까지 불리면서 제18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첫 여성·부녀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그런 영광은 뒤로하고 이제는 불구속 상태에서 법정 다툼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박 전 대통령의 19년 정치인생이 이처럼 비참하게 끝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박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최순실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4일 대국민담화에서 말한 대로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줬기 때문에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다”고 말한 최순실 씨 때문에 탄핵과 검찰 소환 조사, 영장실질심사라는 치욕을 겪게 됐다.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서거한 후 칩거하던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방관할 수 없다며 대중 앞에 나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98년 4월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여의도로 입성했으며 19대 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박 전 대통령은 미래연합 창당 등 혼란기를 거쳐 2004년부터 유력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키운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때부터 2년 3개월 동안 당 대표를 지내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 등에서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대 0’이라는 완승을 거두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호칭까지 얻게 됐다.
유력 대 주자로 발돋움한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패배했다. 이때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연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와 함께 2009∼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해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면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를 토대로 2012년 대선에 승리해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그러나 집권 4년 차인 2016년에 최순실 파문이 터지면서 박 전 대통령의 19년 정치인생도 뿌리째 흔들렸다.
풍문으로 나돌던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와의 관계가 드러나고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면서 국민적 퇴진 요구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결국,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박 전 대통령은 관저 칩거 생활 속에서 명예 회복을 위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특별검사 수사에 총력 대응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일 탄핵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오게 됐다.
이어 특검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검찰이 피의자 신분으로 박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신체의 자유’마저 잃어버릴 상황에 놓이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 관저에서 삼성동 자택으로 복귀하면서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말한 만큼 앞으로 법정 투쟁을 통해 명예 회복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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