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산학(算學)은 비록 술수라 하겠지만 국가의 긴요한 사무이므로, 역대로 내려오면서 모두 폐하지 않았다.…지금 산학을 예습하게 하려면 그 방책이 어디에 있는지 의논하여 아뢰라."
'세종실록' 중 세종 25년 11월 17일 쓰인 기사 '산학을 예습하게 할 방책을 세우려 집현전으로 하여금 역대 산학의 법을 상고하게 하다'의 일부분이다.
이 기사는 세종대왕이 얼마나 산학, 즉 지금의 수학을 중히 여겼는지 짐작게 한다.
이처럼 세종대 융성했던 조선의 수학은 15세기 후반 들어 점점 쇠퇴해 임진왜란이 일어난 16세기 말까지 암흑기를 보낸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청에서 새로이 만든 역법인 '시헌력'이 반포돼 이를 연구하려는 노력이 일게 되고, 여기에 청에서 귀국한 소현세자로 인해 서양 수학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19세기 중반에는 상당한 수준으로까지 재도약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전통 수학에 관한 연구는 얼마나 이뤄져 있을까.
안타깝게도 전통 한국수학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상당수 묻히거나 잊힌 상태다.
12일 한국고전번역원에 따르면 고려대 김영욱 수학과 교수팀은 번역원의 의뢰로 작성한 '전통 과학기술분야 고전적 조사 연구(산학)' 보고서에서 "우리 조상은 원주율을 터득하고 방정식을 풀었으며 독창적인 일식 관측과 역법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아직도 햇빛을 못 보고 있거나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그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우리 산학이 많이 있다"고 밝혔다.
'수학절요' 서문 일부 (연합)
예컨대 1700년 박율이 쓴 '산학원본'(算學原本)은 조선 산서 중 최초로 '천원술'(天元術·1차 방정식의 근을 구하는 동양의 계산법)을 사용해 5차 방정식을 풀었다.
1882년 간행된 안종화의 '수학절요'(數學節要)는 승법(어떤 수를 몇 곱절하는 계산법)을 '포지금'(鋪地錦)이라고 불리는 방법으로 계산했다. 차근방(借根方·유럽계 방정식)이나 '체류'(體類·3차 방정식) 등에 관한 내용도 포함했다.
이들 산학서를 비롯해 아직 많은 산서가 번역이 되지 않았거나 재번역이 필요한 실정이다.
김 교수는 "2004년 약 17권의 조선시대 산서가 번역됐지만 이는 파악된 산서의 50%에 불과하다"며 "우리 수학사를 제대로 알고 소개하려면 수학사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