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의 원화 가치가 급등하며 아시아 통화 중 가장 빠른 상승세를 보였다.
3일 연합인포맥스(화면번호 2116)와 캐피털 이코노믹스(CE)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이후 3월 말까지 한 달간 미국 달러화에 견준 한국의 원화 가치는 8.15% 올랐다.
이런 오름폭은 11개 아시아 통화 가운데 가장 컸다.
다음으로 말레이시아 링깃(7.97%), 싱가포르 달러(4.32%), 대만 달러(3.44%), 필리핀 페소(3.16%), 인도 루피(2.94%) 등의 순으로 많이 올랐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아시아 통화의 빠른 반등은 중국 위안화의 절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면서 시장 심리가 개선된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지난 3월 통화정책회의가 예상보다 비둘기파적이었던 것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대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원화의 연초 급등락은 원화가 신흥국의 경기 침체 리스크를 반영한 대표성을 띠기 때문이라며 특히 3월 원화 급등은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지연 시사에 따른 위험자산 가격이 반등하고 신흥국의 침체 위험이 완화한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2월 말 호주중앙은행(RBA)의 원화 국채 투자 소식이 원화 강세에 기여했고, 말레이시아 링깃화는 유가 상승에 3월 강하게 반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합)
가레스 레더 CE 선임 아시아 이코노미스트는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원화 가치가 신흥국 통화 중 가장 빠르게 오른 것은 위험 회피 심리가 완화된 데다 "RBA가 외환보유액의 5%가량을 한국의 원화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것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RBA는 지난 3월 2일 최근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원화 자산에 투자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RBA는 순 외환보유액의 5%가 원화 자산으로 구성됐다며 최근의 원화 자산 매입은 원화 자산에 대한 투자를 일정 비중으로 가져가는 중앙은행의 정책에 부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월 말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245.30원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3월 말 1,143.50원까지 떨어졌다. 이는 그만큼 원화 가치는 올랐다는 얘기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전체 원화 상승률은 2.54%로 링깃화의 상승률(10.41%)에 크게 못 미친다. 이는 원화 강세 추세가 2월 말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링깃화는 올해 1분기 유가 반등에 힘입어 아시아 통화 중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다. 오름폭은 무려 10.41%에 달한다. 다른 산유국 통화인 러시아 루블화와 브라질 헤알화 가치도 같은 기간 8.55%, 10.32% 올랐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원화는 올해 첫 8주 동안 미 달러화에 대해 5.4% 절하됐다. 첫 8주간의 절하폭으로는 주요 통화 중 아르헨티나(-16.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연초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한 여파로 원화가 상대적으로 빠른 반등을 보였다"라며 "연초 낙폭 과대에 따른 반작용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통화 완화 분위기에 대외여건이 빠르게 되돌림되는 가운데 외국인이 국내 주식과 채권을 순매수하기 시작했고 역외 거래자의 원화 거래도 늘어나면서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외국인들은 3월 한 달간 한국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총 3조 7천억원가량을 순매수했다. 또 국내 채권시장에서도 1조 9천억원가량을 사들였다.
하지만, 이같은 강세 기조가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연준이 오는 6월경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중국의 자본유출이 진정되면 중국 당국이 위안화를 추가로 절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 신흥국 통화의 강세도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이상원 연구원은 현 상황은 미국 금리 인상이 지연되면서 원화 절상 압력이 일시적으로 심화했던 작년 상반기와 유사하다며 미국의 금리 인상이 재개될 경우 중국 자본이탈 우려가 동시에 재부각돼 원화 가치가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레더 이코노미스트도 위안화가 약세로 전환되면 중국과 무역 관계로 강하게 얽혀 있는 대만달러와 한국의 원화가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4분기 말 기준 원/달러 환율 중간 전망치는 1,220원으로 지난 1일의 1,154원보다 5.7%가량 높다. 이는 원화 가치는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도 올해 말 원/달러 환율이 1,120원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올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 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블룸버그가 23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로는 올해 말 한국의 기준금리 중간 전망치는 1.25%로 현행 1.50%보다 0.25% 낮다.
한국의 통화정책이 완화적 기조를 띠고 미국은 반대로 금리를 인상할 경우 원화절하 압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대일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달러화 강세가 재개되면 쉽게 동조화돼 상승(원화가치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작년 하반기 이후 위안화가 달러화 지수에 연동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 기대에 따른 위안화 약세가 재개되면 원/달러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레더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의 기대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돼 신흥국 통화와 다른 위험 자산이 일부 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도 보고서에서 아시아 통화정책과 연준 통화정책의 차별화는 아시아 통화의 추가적인 강세를 제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레더 이코노미스트는 "맥락이 중요하다"라며 "미국의 금리 인상은 경기 회복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를 반영한 경기 상황은 위험자산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BOA-메릴린치도 원화를 사고, 대만달러를 파는 거래를 선호한다며 대만 당국자들은 대만달러의 추가 약세를 선호하고 추가로 금리를 내릴 수 있다고 시사한 반면, 한국은 최근 금리를 동결한 데다 원/엔과 원/위안의 환율 수준이 역대 기준상 경쟁력이 있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당국자들이 현 원화 수준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