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조선 경기 악화에 따른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소 3사의 위기는 협력 하청업체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신규 수주가 끊기면서 해양플랜트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업체들은 종업원 수를 줄이는 등 감량경영에 돌입했지만 벌써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체불임금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와중에 금융권은 경영 내용은 보지도 않고 조선업종이란 이유로 대출을 중단했다고 업체들은 아우성이다.
당장 유가가 회복되고 선주들로부터 추가 수주가 이뤄지지 않으면 우려하던 사태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소 협력업체들은 원청업체 눈치를 살피면서 하루하루 불안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용위기지역' 지정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마저 당장은 힘든 상태다.
(Yonhap)
◇ 거제 문 닫는 업체·임금 공사비 체불도 속출
18일 오후 경남 거제시 연초면 연초해안로 오비일반산업단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협력업체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대우조선 1차 협력업체인 GMP산업에서는 모두 18명의 근로자들이 땀을 흘려가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해양플랜트 특수배관제를 제작해 대우조선에 납품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 대표와 근로자들은 올들어 부쩍 힘이 빠진 상태다.
조선경기 악화가 본격화된 지난해 말부터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해 올들어 매출이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수배관제 지지대를 만드는 근로자 김모(61)씨는 "조선경기가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자주 들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임금이 동결됐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 옥영기(60) 대표는 "국제유가 하락 탓에 조선경기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양대 조선소가 열심히 선박을 만들어도 선주사들이 인수하지 않으면 조선업계 어려움이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비일반산단에는 4~5개 조선소 협력업체들이 들어서 있지만 사정은 GMP와 비슷하다.
경영난으로 아예 문을 굳게 닫은 협력업체도 있다.
㈜장한 협력업체들은 지난해 12월 체불 임금 및 공사대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장한이 임금, 공사대금 등 67억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만큼 거제 조선소 협력업체들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체불임금과 관련된 민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영고용노동지청에 따르면 산하 거제와 통영, 고성 지역의 체불임금 규모는 올들어 3월말 현재 9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3배가량으로 늘었다.
물론 체불임금 발생 업체 모두가 조선소 협력업체는 아니지만 이들 지역에 조선소 관련 협력업체들이 몰려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조선경기 불황에 따른 체임 등 노사분규가 점차 늘어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현재 대우조선 사내 협력업체는 모두 187개사로 3만5천여명이 일하고 있다.
삼성중은 144개사에 2만3천여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아직까지는 조선경기 악화에 따른 경영난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양사의 선박 건조 장비, 장치 등을 이용해 납품을 하고 있는 만큼 조선경기가 회복되지 않더라도 큰 손해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GMP 같은 사외 협력업체들은 설비에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투입한 상황이기 때문에 조선경기가 조기에 회복되지 않으면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영세한 사외 협력업체들은 외부 충격에 약해 곧바로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근로자들도 임시직들이 많아 고용상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는 게 거제시 관계자의 말이다.
GMP 옥 대표는 "사외 협력업체들은 조선경기 악화 직격탄을 맞게 된다"며 "전 세계적으로 유가 폭락으로 조선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인 만큼 한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고 말했다.
협력업체들은 최근들어 금융권이 조선업종에 대해서는 담보 여부와 재무구조 상황에 관계없이 대출을 아예 해주지 않기로 해 경영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업체들은 금융권이 선별적으로 건실한 기업에 대해 대출을 해주고 정부 당국이 세금 납부 유예 등 지원책을 조속히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고용위기지역'으로 신속히 지정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관계 당국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냈다.
시 관계자는 "고용위기지역 지정 등을 검토중이지만 아직까지는 경제지표가 양호한 것으로 나와 고민 중"이라며 "다만 조선경기 악화로 주로 중소 협력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울산 업체들 "현재 공사 마무리되면 문 닫지 않을까 불안"
이날 오전 울산시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조선사업본부의 한 선박 블록 작업장에는 사내 협력회사 근로자들이 저마다 철판 위에 자리를 잡고 용접 불꽃을 튀기며 작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근로자들이 일하고 대형 골리앗 크레인이 웅웅 기계음을 내며 움직이는 생산현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예년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현대중공업은 이미 3년째 연속 5조 적자를 기록한 데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수주한 선박이 3척에 불과하다. '수주 절벽'에 놓일 경우 당장 내년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협력업체 한 관계자는 "그나마 이전에 수주한 물량이 있어 협력업체 근로자들도 지금은 일을 할 수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예년 보다 일감이 줄었다.
선박 블록 용접을 하는 업체 근로자 K씨는 "전에는 거의 매일 저녁 연장근무를 하고 주말에도 특근을 했는데, 요새는 일감이 줄면서 주말 특근은 거의 사라졌고 평일 연장도 안하는 날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원청의 적자 경영 위기는 협력업체에는 곧바로 직격탄이 됐다.
근로자 수는 줄고 문을 닫는 업체는 속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 협력업체는 모두 300여개에 근로자는 3만여 명에 이른다.
업체 근로자수는 2013년 말 3만6천여명에 달했지만, 2014년 말 3만5천500여명, 2015년 말 3만4천600여명, 2016년 3월 말 3만1천700여명으로 점차 줄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현대중공업과 인근 울산에 본사를 둔 현대미포조선의 사내 협력업체 34곳이 문을 닫았다.
이 때문에 근로자 3천400여 명의 임금 197억원 상당이 체불됐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사내협력사 임금체불을 예방하기 위해 노동지청과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3개 기관·기업이 모여 대책협의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장기 조선 침체기에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선박용 강재 관리 작업을 하는 A협력회사 대표는 "조선업 불황으로 일감이 계속 줄면서 최근 1년 사이에 직원 수를 50명에서 40명으로 20%나 줄였다"고 했다.
그는 "최근 선박 수주가 크게 줄어 앞으로 일감이 더욱 줄 것으로 보인다"며 "인력운영 효율화 등 자체 경쟁력을 높이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 보다 해양플랜트사업은 위기를 더 실감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달 들어 울산 온산 해양2공장 문을 닫고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2014년 11월 이후 신규 해양플랜트 공사를 한 건도 수주 못하는 등 어려움에 부딪쳤다.
하반기가 되면 남은 공사가 마무리돼 내년부터 공사가 확연히 줄어 원청은 원청대로 일감이 쪼그라들고, 협력업체는 업체대로 회사 문을 닫아야할지 말지 생사 기로에 놓였다.
해양플랜트사업본부에서 부유식생산설비 공사를 하는 B협력회사 대표는 "지금 하고 있는 공사가 올해 하반기에 마무리되면 일감이 없어 회사 문을 닫아야할지도 모른다"며 "신규 수주 외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같은 사업본부 협력회사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당장 지금하고 있는 공사가 끝나면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대부분 회사가 인력을 줄이는 상황이라 이직도 쉽지 않다"고 걱정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