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에 낳았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죄인이 된 생각에 분만 순간부터 지금까지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 때문에 12월에 출산한 부모는 모두 저 같은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까."
김지수(39)씨는 최근 딸을 낳았다. 김씨는 자녀를 얻은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커다란 압박감에 짓눌렸다. 바로 아이 출생일이 지난해 마지막 날이라는 점 때문이다.
한국식 나이 셈법에 따라 김씨의 딸은 눈도 뜨지 못한 생후 2일째 되던 날 두 살이 됐다.
임신 기간 내내 예정일이 12월이라는 점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예정일이 12월이라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한결같이 "해를 넘겨 낳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123rf)
김씨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버텨보고 싶었지만 결국 12월 31일에 출산하게 됐다"며 "열 달의 힘든 임신 기간을 거쳐 귀중한 한 생명이 태어나는 그 시간에 축하한다는 말보다 '아쉽다, 그럼 내일 되면 2살인 거냐'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병원에서 의사, 간호사들도 '어쩌죠. 내일로 넘기기 힘든 것 같은데 산모님 괜찮으시겠어요. 속상하시겠어요'라고 했다"고 전했다.
단순히 태어나자마자 두 살이 된다는 것이 김씨 부부 걱정의 끝은 아니다.
김씨는 "같은 해 1월에 태어난 아이가 걷고 돌잔치 준비할 때 저희 딸은 아직 눈도 못 뜨고 있는 신생아이지만 같은 나이"라며 "어린이집이나 학교 등 같은 공간에서 활동해야 할 생각을 하니 생일이 빠른 아이들한테 치일까 봐 아이에게 너무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처럼 12월에 출산해 산후조리원에 같이 있던 산모들 모두 한결같이 '죄인이라고, 할 수만 있다면 출생일을 바꾸고 싶다'고까지 한다"고 전했다.
몇 달만 출생이 빨라도 발달 정도가 확연히 차이 나는 영유아기에는 1월생과 12월생이 한국식으로는 같은 나이인 바람에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씨의 이야기처럼 어린이집 이용에서 빚어진다.
4살 딸을 둔 이지영(38)씨도 "지난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12월생 아이에게 물린 적이 있다"며 "상대 아이 부모가 약을 보내고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 '아직 아이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터라 훈육을 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류호영 과장은 "만 5세 이하 영유아는 몇개월 차이로도 발달이 꽤 차이 나기 때문에 생일이 늦은 아이를 둔 부모가 한국 나이로 한 살 적은 아이들 반에 편성되기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며 "어린이집 운영자 입장에서도 애로점이 있어서 보조교사를 둬 늦게 태어난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돌본다든지 한국식 나이를 꼭 지키지 않은 혼합반 편성을 하는 등 방식으로 보완한다"고 전했다.
제보자 김씨는 "생일이 늦은 사람이 한국식 나이로 입는 피해는 단지 유아기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살아가면서 입시, 취업, 결혼 등 중요한 고비마다 억울하게 손해를 봐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공서나 병원 같은 곳에서는 만 나이를 쓰면서 왜 아직도 한국식 나이 제도를 폐지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도로명 주소를 쓰는 것처럼 계도 기간을 거치고 홍보를 하면 얼마든지 태어난 지 1년이 지나야 한 살이 되는 세계 공용의 나이 제도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해가 바뀌면 한 살을 더 먹는 한국식 '셈 나이', 민법에서 적용하는 '만 나이', 청소년 보호법 등에서 쓰는 해당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뺀 '연 나이' 등 세 가지 나이 제도가 혼용되는 우리나라에서 연령 계산을 만 나이로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은 매해 연말연시가 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입법 활동도 이뤄진 바 있지만 진척은 되지 않고 있는 상황.
지난해 1월 초 민주평화당 황주홍 의원이 연령 계산과 표시방식 차이로 인한 불필요한 행정비용 낭비, 외국과 다른 연령 기준으로 인한 정보전달의 혼선, 특정 월의 출산 기피 현상 등 부작용을 막을 목적으로 만 나이로 통일해서 사용하자는 내용의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황 의원실 관계자는 1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얼마 남지 않은 20대 국회 임기 안에 법안 통과는 어려울 듯 해 자동 폐기될 전망"이라며 "국민 불편이 큰 사안이면서도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는 인식되지 않아 국회가 개정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제보자 김씨는 "제발 한국식 나이로 인해 12월생 자녀의 부모가 한숨 짓는 일, 연말에 출산 예정인 산모가 출산일을 걱정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며 한국식 나이 계산법을 개선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