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 Sept. 15, 2019 - 08:58
"일본에도 한일 우호를 기원하는 많은 시민이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린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광장 한쪽에 검은색 안대를 차고 홀로 서 있는 한 남성이 시선을 끌었다. 일본인이라고 밝힌 그의 옆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다음과 같이 쓴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일본의 일부 극단적인 방송은 '모든 한국인은 일본인을 싫어한다'고 보도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믿어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안아주세요!"
프리허그의 주인공은 구와바라 고이치(桑原功一·36)씨. 잠시 경계하던 시민들은 이내 그와 포옹하고 악수하고 응원도 보냈다.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그와 체온을 나누는 이들은 다양했다.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은 유튜브에서 1주일 만에 40만이 넘는 조회 수를 올릴 정도로 큰 화제를 낳았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만난 구와바라씨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미워하는 감정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이번 이벤트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구와바라씨의 고향인 일본 군마(群馬)현은 한국에 잘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다. 이 때문에 2003년 도쿄도 하치오지(八王子)시에 있는 소카(創價)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한국인을 마주치기 힘들었을 정도. 그는 "(직접 본 적이 없으니) 뉴스에서 말하는 것처럼 '대부분 한국인은 일본인을 싫어한다'는 편견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더라"고 털어놨다.
그런 편견은 2008년 필리핀 교환학생 시절에 만난 한국인 친구들 덕분에 깨지기 시작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더라고요. 낯선 이에게 친절하고 정도 많았어요. 선입견을 가졌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 이후로 한국에 관심을 가졌고 더 많이 알고 싶었어요"
구와바라씨는 2011년부터 매년 두세차례 이상 한국을 찾았다. 평소 여행을 좋아해서 홍콩, 인도, 필리핀 등 10여개 국가를 다녔지만 그중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가장 많이 끊었다고 자랑한다. 지난달에는 서울 종로에서 열린 1천400번째 위안부 수요집회에도 찹석했다. 그는 "한국말로 진행돼서 정확한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떤 취지로 1천회 넘게 이어온 집회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주 찾은 만큼 예년과 달라진 최근의 기류도 금세 느껴졌다. 거리 곳곳에 써 붙인 일본 제품 불매운동 문구와 더불어 한산해진 일본 의류 매장은 평소에는 보기 힘든 한국의 모습이었다. 냉랭해진 분위기에 걱정도 든 게 사실이다.
구와바라씨는 "특히 관련 뉴스를 접한 가족들이 '시위도 과격하고 일본인이라고 하면 자칫 불상사를 당할 수도 있다'고 말렸다"며 "그러나 프리 허그를 위해 눈을 가리고 서 있던 내내 어떠한 불미스러운 일도 겪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실제로 당시 프리 허그에 참여한 이들은 그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당시 촛불문화제를 위해 광화문을 찾았다가 구와바라씨와 포옹을 나눈 직장인 송모(35)씨는 "최근 양국 상황이 안 좋은 것 맞지만 대다수의 양국 시민은 선량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구와바라씨는 정치나 군사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의 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민간으로까지 미움이 번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한일간 우정을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지만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도전을 보고서 공감할 이들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그의 바람대로 해당 영상이 올라온 이후 프리 허그 운동에 응원하거나 동참하겠다는 수십개의 메시지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달됐다. 그중에는 '내가 일본에서 프리허그 운동을 하겠다'고 밝힌 한국인도 있었다고 한다.
"직접 만나보면 편견도 없어져요. 좋은 한국 친구들을 사귀면서 오해나 미움 대신 애정이 생겼던 저처럼 말이죠. 과거의 저 같은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프리허그 운동은 꾸준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