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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제가 당직 할게요"…명절때 고향 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

By 박세환
Published : Sept. 4, 2016 - 09:10
충북의 한 자치단체에 근무하는 A(36)씨는 지난주 공개된 이달 근무표를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추석 연휴 근무조에 편성됐기 때문이다.

A씨에게 추석 연휴근무는 "올해는 꼭 결혼해라"는 친척들의 성화로 받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명절 선물(?)'인 셈이다.



A씨는 근무표를 확인한 뒤 곧바로 고향 집에 전화를 걸어 "당직근무가 걸려 어쩔 수 없이 추석에 가지 못하게 됐다"며 "죄송하다"고 전했다.

A씨는 "만나는 집안 어른마다 언제 결혼하느냐고 묻는 명절이 괴롭다"며 "부모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올해 추석은 근무 핑계로 집에 가지 않아도 돼 스트레스 없이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청주의 한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B(34·여)씨는 아예 연휴 근무를 자원했다.

명절 때 만나는 친척마다 결혼 계획을 묻는 탓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던 그로서는 특근 수당까지 챙길 수 있는 연휴 근무는 1석2조의 보너스인 셈이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지만, 명절만 되면 결혼 문제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탓에 그는 해가 갈수록 귀성길에 오르는 것이 불편하다.

최근에는 고향에 가도 회포를 풀 친구도 마땅치 않아 더더욱 고향 집 가는 걸음이 무겁다.

B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맘껏 수다를 풀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을 하면서 고향에 가도 만나기 어렵다"며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도 주제가 대부분 남편과 아이들이어서 서먹해지고 멀게 느껴지더라"고 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잡지 못한 취업준비생들에게는 명절이 더욱 고통스럽다.

친척들이 인사치레로 "언제 취업을 할 거냐"고 물을 때마다 마치 사회의 낙오자가 된 것같은 기분이 들어 명절을 지낸 뒤 한동안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3년째 '공시생'인 C(29)씨는 지난 설에는 고향에 갔지만, 이번 추석에는 자취방에서 지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다. 설 때 친척들에게 둘러싸여 죄인처럼 눈치를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C씨는 "시험준비는 잘되느냐, 올해는 합격할 것 같으냐고 물어보는 친척들 얼굴 보기가 껄끄럽고 자격지심까지 생긴다"며 "연휴 기간에는 어차피 공부하기는 힘들 것 같아 함께 지내는 형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알바를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가족 없이 지내는 명절이 쓸쓸하겠지만, 고문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쓸쓸히 웃어 보였다.

결혼한 여성 직장인들도 명절을 부담스러워 한다.

제사 준비에 친척 등 손님맞이, '시댁 스트레스'까지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들의 눈을 의식해 드러내놓고 연휴에 근무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게 사실이다.

청주시청에 근무하는 D(39·여)씨는 "혹시나 했는데 명절 근무조에 편성되지 않았다"며 "어차피 해야 할 일 즐겁게 하자는 생각으로 추석을 맞으려 한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20∼50대 남녀 1천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명절 스트레스가 세대별로 달랐다.

20대는 '취업, 결혼 등에 대한 잔소리'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30대는 '명절 음식장만', 40대는 '교통체증'을 꼽았다.

명절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도피 여행'을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여행사마다 추석 연휴에 다녀올 수 있는 3∼4일 일정의 중국, 일본, 동남아 등의 여행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하나투어는 오는 13∼15일 사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예약자가 8월 말 현재 2만6천500명으로, 지난해 추석 연휴(9월 25∼27일)보다 29% 증가한 것으로 집계했다.

해외여행 지역은 동남아가 전체 예약자의 40%로 가장 많고 중국(28%)과 일본(21%)이 뒤를 이었다. 동남아는 작년보다 예약자가 무려 58% 늘었다.

연휴 기간 해외로 나가려는 이들이 넘쳐나면서 일본, 중국, 동남아 노선을 운항하는 저비용 항공도 인기가 치솟고 있다.

에어부산의 경우 후쿠오카, 오사카, 삿포로, 나리타 등 5개 일본행 노선 예약률이 8월 말을 기준으로 90%를 넘어섰다.

여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명절 여행 상품이 거의 팔리지 않았으나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명절에 대한 개념이 바뀌면서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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